[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현대약품의 임신중단약물 미프지미소 허가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가 파행으로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부인과의사회 측에서 소송도 불사할 각오를 밝히면서, 미프지미소의 연내 허가가 불투명해지는 모양새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식약처와 복지부가 연 미프지미소 도입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는 이날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회의 시작 불과 30여분 만에 종료됐다.
이날 회의가 중단된 이유는 의료계와 정부 부처 간 갈등으로 전해졌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그동안 산부인과 분야 전문가로서 미프지미소에 대한 검증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이날 회의에서도 식약처는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며 “회의를 더 길게 가져갈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미프지미소 도입 전에 현재 교통정리가 안 된 관련 법들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낙태죄 처벌 규정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지난해 입법시한 초과로 자동 폐기됐다”며 “하지만 여전히 약사법상 낙태를 암시하는 문서 및 도안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재 이를 삭제하는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지만, 현행법상 아직 임신중단약물은 불법 의약품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에는 순서가 있다. 입법 공백 상황에서 임신중단약물, 그것도 수입 의약품을 가교 임상 없이 허가하는 것은 일종의 특혜이자 식약처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관련법이 정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신중단약물을 먼저 허가하고 처방하도록 하는 것은 의사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조하는 행위다. 법 개정을 선행한 뒤에 도입을 본격화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식약처는 법 개정 없이도 도입이 가능하다고 맞서 평행선을 그렸다. 문은희 식약처 의약품정책과장은 지난 23일 “효능·효과에 임신중절이 들어간다고 해서 낙태암시 표현 관련 개정 약사법에 적용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며 “의약품 심사가 형법 개정을 전제로 진행해야 하는 사안은 아니다. 다만 사용환경이 조성되도록 법 개정은 조속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교 임상 사안에서도 의료계와 식약처 대립은 팽팽했다. 의료계는 임신중단약물을 도입하기 전 국내 임신부에게도 안전한지를 가교 임상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김 회장은 “미프지미소는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미프진(성분명 미페프리스톤)과 달리 자궁수축을 유도하는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쓴다”며 “약의 안전성을 담보하려면 반드시 국내서 가교임상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식약처는 현재 의료계 의견을 무시한 채 가교 임상을 건너뛰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식약처는 현재 ‘가교 임상 면제’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지난 9월 2일 식약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가교 임상 진행에 2~3년이 필요한 까닭에 도입이 지나치게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가교 임상 면제 신청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자문하기로 결정했다.
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미프지미소 도입이 강행되면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앞서 김재연 회장은 “관련법 개정 및 가교 임상 전에는 미프지미소 도입을 보류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며 “임신중단약물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순리에 맞게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만약 날치기로 허가를 밀어붙일 시 식약처를 비롯한 관계부처를 직권남용으로 검찰 고발하고 허가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불사할 계획”이라며 “어느 것이 약이 필요한 임신부들에게 더 옳은 선택이 될지 식약처가 잘 판단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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