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1990년대 초 자살률이 증가하던 유럽 및 미국 등에서는 안전한 SSRI 항우울제 시판으로 부작용이 많은 삼환계 항우울제를 대체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만 비정신과의사 처방 제한"
이를 통해 일차의료에서 우울증 치료율을 증가시킬 수 있었고, SSRI 항우울제 사용이 증가하면서 자살률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다.
SSRI는 우수한 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전세계적으로 1차 선택약으로 최소 6~12개월 이상 치료가 권고되는 약물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국민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아직 큰 장애물이 있다. 비정신과 의사의 항우울제 SSRI 처방 60일 제한 규정이다.
우리 사회의 오랜 문제인 높은 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계 역할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비정신과의사 처방이 제한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2년 3월 SSRI를 처방할 때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60일 이상 처방하지 못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고시를 시행했다. 이 고시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의사가 안전하게 우울증의 1차 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는 약물을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이 규정 때문에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60일의 처방이 끝나면 환자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내야 한다. 우울증환자의 병의원 접근성이 오히려 감소하면서 우울증 치료율과 자살률에 영향을 미치는 실정이다.
"일차의료의사로부터 항우울제 처방받은 대다수 환자, 정신건강의학과 전원 등 거부"
실제로 일차의료의사로부터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던 환자의 대다수(85% 이상)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사회 부정적 인식 및 환자 스스로의 불편감, 현재 일차진료의에 대한 편의성 등의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전원 및 전과를 거부하는 것으로 조사된다.
또 SSRI 항우울제 처방이 제한되면서 우울증 환자들의 병의원 접근성이 20분의 1로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전 세계 자살률 추이도 주목할만 하다. 2003년 이후 모든 OECD 국가의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한국만 자살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가정의학회에선 이 같은 추세가 우울증 치료 제도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우울증 약물치료는 충분한 투약기간 확보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근거는 충분히 많다. 또한 60일이라는 짧은 기간 항우울제를 사용하고 효과를 판단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따라서 우리 학회는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일차 의료기관 모든 의사들이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일차의료 방문환자의 10~20%가 우울 경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9~23%가 우울증을 동반한다. 일차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만성질환자와 우울증 환자군의 교집합이 상당한 것이다.
앞서 대한가정의학회는 “2013년 ‘자살예방 가정의 선언’을 통해 대한민국 자살예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으며 지속적인 교육과 활동으로 일차의료를 통한 대한민국 자살예방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비정신과 의사의 SSRI 60일 제한을 철폐하여 일차의료의사들이 우울증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차의료에서 우울증이라고 생각치 않은 사람들 절망감 느끼지 않게 하면서 안정적으로 치료 가능"
실제 일차의료에서 발견되는 우울증 환자의 대부분은 두통, 피로감, 요통, 현기증, 흉통 등 신체증상을 주로 호소한다. 이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생각도 해보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일차의료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장점으로는 우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의뢰되는 절망감을 느끼지 않고 증상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사에게 계속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신체적 증상과 정신적 치료를 병행해서 치료할 수 있어 우울증 환자를 초기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이 밖에 의료보험 재정측면에서도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대한가정의학회가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우울증 관리를 위해서는 오히려 일차진료의사 처방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회는 앞서 “일차의료의사가 우울증 환자를 찾아내 경증에서 치료하고, 중등도 우울증은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므로 중증 우울증은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연결하는 것이 효율적인 우울증 관리 방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차 말하지만 우울증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해선 의사와 환자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일차의료기관 역할이 중요하다. 오랜기간 환자 상태를 살펴온 일차의료 의사들이 이상증상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다.
우울증은 만성질환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자살 위험도를 크게 높일 수 있어 더욱 문제다. 일차의료기관에서의 우울증 발견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