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백성주 기자] 전 세계 당뇨병 유병 인구가 4억 6,000만 명에 달하면서 당뇨는 이제 개인 질병을 넘어 사회적 국가적 이슈가 됐다. 우리나라도 2020년 발표된 당뇨병 팩트시트(DFS2020)에 따르면 성인 7명 중 1명이 당뇨병 환자고, 당뇨병과 공복혈당장애를 포함한 인구가 1,440만 명을 넘었다. 당뇨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이고 통합적 관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임상 및 기초 연구는 물론 간호, 영양, 사회복지,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4,00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학술단체 중 하나다. 20여 개 산하 전문위원회 및 연구회가 ‘당뇨병 정복’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당뇨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격려와 협력, 사회 관심과 올바른 인식, 전문가들 사명과 국가 책임이 더해진다면 당뇨병 퇴치는 먼 미래의 희망이 아닐 수 있다. 당뇨병 연구를 선도하는 학문적 성과, 진료의 질적 발전을 위해 전문가단체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대한당뇨병학회를 이끌고 있는 윤건호 이사장(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을 데일리메디가 만났다.
“코로나19때 임기 시작 박복한 이사장이지만 오히려 전화위복, 학회지 IF도 5점 넘어”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전혀 새로운 환경이 도래해 지금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사장직을 마무리하게 됐다. 역대 누구보다 박복한 이사장으로 평가받는다.”
윤건호 이사장은 의학분야 학회 활동은 ‘만남과 소통의 장(場)’이라고 전제했다. 실제 학회를 통해 많은 이들이 지식을 나누고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의사들의 축제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학회 수장들은 수십 년 갖춰온 틀 내에서 활동하며 약간의 변화를 통해 충분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 같은 모습은 일시 사라지게 됐다.
윤 이사장은 “작년 1월 취임 당시 우리나라에만 갇혀 있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국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안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찬스가 됐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해외 학회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ADA(미국당뇨병학회), EASD(유럽당뇨병학회) 등은 주춤했고, 아시아 여러 학회들은 어떠한 활동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당뇨병학회는 온라인학회를 구상했다. 지난해 춘계학술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세차례 진행됐던 웨비나에는 아시아 10개국 의학자들이 참가했다.
윤 이사장은 “웨비나를 통해 우리 젊은 연구자를 외국에 노출시키고, 해외 유명 연구자들이 우리와 연계되는 효과를 갖게 됐다. 미국은 ADA, 유럽은 EASD, 아시아는 ICDM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회에선 전세계 당뇨병 연구의 새로운 판을 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현재 학회는 늘어나고 있는 외국인 회원들에 대한 규정도 다시 만드는 중이다.
또 다른 성과도 있다. 지난 2017년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에 등재된 학회 공식 학술지 DMJ(Diabetes & Metabolism Journal)가 임팩트 팩터 5점을 넘어서는 쾌거를 올렸다. 이는 국내 전체 학술지 중 7위 수준에 해당된다.
그는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학회 활동은 예전과 달라질 것으로 본다”면서 “학회를 직접 방문하는 이는 줄겠지만 접속자는 크게 늘면서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커지고 많은 저변 확대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혁신적인 치료제와 연속혈당측정기 같은 첨단기기 활용 환자교육·상담 등 과감히 확대해야”
혁신적인 치료제 및 첨단 기기들이 속속 등장하고, 많은 임상 결과들이 연이어 보고되면서 일선 의사들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적재적소에 치료제들이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학회의 주요 미션 중 하나가 됐다.
최근 당뇨 분야에선 혈당을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제공해 주는 연속혈당측정기(Continuous Glucose Monitoring, CGM)가 최대 관심사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기존에 불편했던 손가락 채혈 없이 실시간으로 혈당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서는 지난해 1월부터 제1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윤건호 이사장은 “CGM은 꼭 1형 환자만을 위한 기기는 아니다. 당뇨병 또는 혈당 변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혈당 변화를 확인하면 수십시간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소개했다.
다만 그는 “해당 기기와 측정 결과에 대해 환자가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교육상담수가’ 필요성을 언급했다.
윤 이사장은 “현실에선 의사가 만약 100을 이야기했다면 환자 이해는 30% 수준에 그치게 된다. 많은 정보 전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장에선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고 말했다.
윤건호 이사장은 ‘일부 환자 부담’ 등 다른 방식의 접근을 제안했다. 이 같은 상황이 비단 당뇨병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정부 입장에선 해당 수가를 부여했을 경우 비슷한 사례들에 대한 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바라는 환자들과 건강보험 재정의 한계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기본적인 치료는 국가가 보장하지만, 그 이상의 요구는 돈을 내고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임의비급여는 막아두고 인정비급여만 허용하는 상황이다.
윤 이사장은 “우선 교육 등에 대해선 규제를 풀어주고 비용대비 효과 및 치료에 있어 큰 개선과 의료비를 줄이는데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면 그때 건강보험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면 된다”고 강조했다.
“당뇨병은 마라톤이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므로 가족 같은 의사 동행 중요”
윤건호 이사장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국내 당뇨병 환자에 대한 우려감을 피력했다. 지난 1970년대 1.5%에 그쳤던 당뇨병 유병 인구는 80년대 초중반 10%, 최근엔 14% 수준으로 늘었다.
폭발적인 증가세는 아니지만 고령 인구에서의 유병률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또 전체 인구에서의 비만율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향후 증가 가능성이 큰 이유다.
윤 이사장은 “당뇨 전단계 고위험군이 900만 명에 달하는데다 현재 500만 명의 당뇨병 환자가 치료 및 관리를 받고 있다”면서 국가 차원의 빠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그는 “당뇨병으로 진단돼 치료를 받는데도 환자 절반 이상은 합병증이 생기는 상황에 노출됐다, 지금보다 잘 관리되도록 치료에 임하는 환자는 적극성을, 정부는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의사들도 각성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당뇨병은 마라톤이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며 오랜기간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당장 좋아질 수 없기에 하나씩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치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 역할은 긴밀한 신뢰 형성이다. 가족이 돼 환자는 솔직하게 아픔을 털어 놓고 의사는 진심을 다해 치료와 관리에 임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윤 이사장은 “신뢰를 쌓기 위해선 무엇보다 진료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환자를 봐야 돈을 벌게 되는 구조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그냥 약만 주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의사가 보는 환자 수를 제한하면서 충분히 소통토록 하고 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이들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