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길게 갈 것이다.’
의료인이라면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또한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코로나19 초기부터 위의 말을 수긍하고 되뇌셨을 것입니다.
현실은 정말로 그러했지만 어느새 2년이라니, 2022년 새해를 맞아 흘러간 시간의 길이가 새삼스럽습니다.
2020년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칼럼을 의뢰 받았을 때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소개했었습니다.
이는 베트남 포로수용소에서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특사로 풀려나겠지’라며 기대했던 사람들과 ‘계속 여기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 후자가 더 건강을 유지하고 8년간 살아남아 귀환했다는 스톡데일 장교의 인터뷰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의료인들은 이를 소개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마음을 갖고 계신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 특성상 최악의 상황도 가정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냉정하게 평가하는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인정함’, ‘일정한 판단에서 참이라고 승인함’ 등 이것은 ‘긍정’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긍정의 한 가지 뜻, 즉 ‘Affirmative’에 포함된 논리적 판단은 의료인들이 잘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논리보다는 어떤 자세를 떠올리게 하는 'Positive' 필요한 때"
하지만 ‘긍정’ 하면 떠오르실 또 다른 단어 ‘Positive’, 논리보다는 어떤 자세를 떠올리게 하는 이 단어가 우리에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참 긍정적이야”라는 말은 논리적 판단보다는 마냥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느낌을 주기에 의료계에서는 이를 터부시 할지 모르겠으나, 막연한 낙관과 긍정적인 자세는 다른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풀려날 것이 분명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현재 포로로 갇혀 있지만, 내 옆에 다행히 마음 잘 맞는 친구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나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새로운 업무가 많아지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분명 힘듭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사라지는 분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내가 종사하는 분야의 요구도가 높아지는 것에 감사할 부분도 있습니다.
바이러스 변화, 약물 효능 등이 다 마음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의료계 실력과 국민들 의식 수준이 높은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병 앞에 인간이 무력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대면 회의·배달 등 기술이 발달한 현재, 100년 전 선조들이 겪은 팬데믹보다는 살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긍정적 자세와 동료 간 격려·지지 중요
근무 중인 병원에서 직원 소진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점차 악화돼가는 직원들의 정신건강 상황에 난감했습니다. 가장 원하는 금전적 보상이나 휴식을 당장 제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의무나 희생에 대한 칭찬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합당한 보상을 하는 것이 시대정신에 맞기에 병원이나 국가 및 지자체에 상황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일부의 지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같은 상황 속에서 정신적 ‘힐링’을 도모할 수 있는 것들, 생각 전환·수용·소소한 취미 활동 등도 도움이 됐기에 ‘긍정’을 주제로 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더불어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이 동료 간 격려였습니다.
옆의 동료에게 감사하고 감사 받는 것, 나를 살펴준다고 느끼는 것이 주는 안정 효과, 의료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동료 간 지지는 특히 중요했습니다.
2021년 지난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움직이기도 힘든 레벨D 방호복을 입는 위증중 병상 동료도, 경영이 어려워진 와중에 의원 문을 닫지 않기 위해 더운 여름에 5종 보호구를 매일 착용했던 동료도, 국민 누구보다 먼저 백신을 맞고 열이 나도 출근해야 했던 동료도 모두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첫째로,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일선에서 많은 환자를 만나시는 만큼 개인 건강은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오래된 그 문구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 ‘Affirmative’와 ‘Positive’ 두가지 긍정이 함께하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셋째로는 크리스마스 포로와 같은 기원을 해도 될지요? ‘삼재’라는 것이 있듯 코로나19 팬데믹도 세번째 해를 지나면 희망이 보이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