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탓에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이 가시화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응급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모호한 법 규정으로 본연의 임무 수행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읍소가 이번에는 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는 1995년 법 제정시 ‘포괄적 응급의료 보조’에서 1999년 14종으로 변경된 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어 응급의료 현장에서 그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2020년 응급구조사 업무에 대해 5년 마다 조사하고 업무 범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응급의료법이 개정됐지만 이후로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를 조정키로 하고 유관기관들을 대상으로 응급구조사들이 수행해야 할 업무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다만 앞서 진행됐던 시범사업을 통해 적용 가능성이 확인된 9개 업무를 대상으로 한정시켰다.
해당 업무는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 △수동제세동기 사용 △아미오다론 투여 △리도카인 투여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응급분만 시 탯줄 절단 △아나필락시스 시 에피네프린 투여 △비마약성진통제 투여 △채혈 등이다.
이들 업무는 스마트의료지도 시범사업, 119구급대원 업무범위 확대 시범사업,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관련 연구용역 등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행위들이다.
응급구조사 채용률이 절대적인 병원계는 여전히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업무 범위 확대에는 공감하면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협회는 최근 제시된 9개 행위 중 3개 항목을 추가하고 1개 항목은 시범사업 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응급환자 생명과 직결된 에피네프린 투여 등은 포함돼 있지 않아 큰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병원협회가 1급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 추가할 수 있다고 지목한 행위는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채혈 △수동제세동기 사용 등이 전부다.
심장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는 시범사업 등을 통한 실증연구 등 추가적인 검토가 이뤄진 후에 시행해야 한다며 사실상 난색을 표했다.
에피네프린은 거의 모든 심정지 환자에게 필수로 투여되는 약물임과 동시에 가능한 빨리 투여해야 한다. 투여가 빠를수록 생존율은 높아진다.
하지만 병협은 “병원 전 단계에서 투여한 약물의 상품명, 성분명, 용량, 투여방법, 투여시각을 의사에게 지체없이 전달할 수 있는 체계를 먼저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응급구조사들은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 응급구조사는 “약화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환자 생명 보다 의사에게 보고 먼저하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일침했다.
소방청 역시 구급대원 업무 범위 확대에 적극적이다.
소방청은 “119 구급대원은 의료법 등의 제한으로 선진국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응급처치 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는 응급환자 소생에 결정적 한계로 작용한다”고 토로했다.
특히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자격이 있는 구급대원은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혼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19 구급대원은 총 1만2732명으로, 이 중 간호사가 3005명(23.6%), 응급구조사가 8521명(66.9%)에 달한다.
이들은 병원 前 단계 응급의료체계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매우 제한적이거나 모호한 구급대원 업무범위 탓에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데 지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불편 부당함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119 구급대원 업무 범위 확대 시범사업’이 시행 중이다.
시범사업에서 허용된 5개 업무는 ▲응급분만 시 탯줄 절단 ▲급성 외상환자비마약성 진통제 투여 ▲아나필락시스 시 에피네프린 투여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 ▲12유도 심전도 등이다.
지금까지 해당 시범사업을 통해 1만2405명의 응급환자가 확대 처치를 받았고, 모든 항목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자발순환 회복률은 일반구급대 8.8% 대비 특별구급대 13.7%로 4.9% 상승했고, 아나필락시스 환자 정상혈압 회복률은 무려 58.3%를 나타냈다.
소방청은 2년 간의 시범사업 결과, 안정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만큼 이제는 시범사업이 아닌 법령 개정을 통해 구급대원의 업무 범위에 정식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시범사업에서 안정성과 효과성이 검증된 항목부터 업무 범위로 인정해 줘야 한다”며 “이는 직역 간 영역다툼이 아닌 국민생명과 직결된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