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박스터가 일부 부서를 대상으로 ‘간주근로시간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내홍이 일고 있다.
병원 내 투석기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박스터 기술부 직원 중 해당 근로형태로의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이 최근 인사고과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간주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에 의거 사업장 밖 근로 중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해당 업무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정해 그만큼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다.
박스터와 기술부 직원에 따르면 해당 부서 직원들은 자사 투석기기가 설치된 병원 병동에 환자가 없을 때 일해야 한다. 이에 야근 및 주말근무가 잦고 이동·대기 시간 또한 길어 필연적으로 연장근로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수당(OT)을 받아왔다.
그런데 산업계 전반에서 ‘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을 골자로 하는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을 준비하면서 박스터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지난해 5월 경부터 회사가 본격적으로 기술부 직원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아닌 간주근로시간제 도입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직원·노조 “동의 안한 직원, 인사평가 일부항목 0점 받아”
기술부 직원 A씨는 당시 회사로부터 “전환에 동의하면 2022년 말까지 월 60만원의 정착지원금과 월 기본급에 4만1667원을 산입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단 2023년부터는 정착지원금 지급에 대해 업무강도 평가를 거쳐 사측과 다시 협의하겠다더라”고 증언했다.
해당 조건에 동의하면 연장근로가 발생해도 더 이상 수당을 받을 수 없고, 대안으로 지급되는 정착지원금 마저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 불만을 느꼈다.
이에 부서 직원 3분의 1이 동의서에 사인하기를 거부하면서 매니저들과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기술부 직원 B씨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고 계속 버티자 지난해 말부터 관리자들이 ‘몇 번 만에 동의했느냐에 따라 인사평가에 차등 점수를 부여하겠다’, ‘52시간을 초과한 시간은 산정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해 근로시간을 깎아서 보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러한 사측의 경고가 실제 이번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B씨는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들은 이번 평가 내 ‘근면(diligence)’ 항목에서 10점 만점에 0점을 받았고, OT 항목의 경우 연장근로 시간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0점에 가까운 1점을 받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박스터 노조(한국민주제약노조) 측은 “해당 갈등이 커지면서 몇몇 직원들은 퇴사했고 지난해 대비 인당 담당 기기 수가 158대에서 281대로 증가해 일은 더 늘어났다”며 “회사는 직원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비용절감만 생각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사측 “공식 인사평가 체제 아니고 번아웃 방지책 함께 모색한 것”
박스터 측은 이들이 주장한 인사고과 평가 체제가 사내 공식적인 제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박스터 관계자는 “점수를 매겨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하는 체제는 오래 전 사라졌고, 부서 매니저 재량에 따라 업무 특성을 반영해 평가 지표를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간주근로시간제가 비용절감을 위해 도입된 체제라는 점에 대해서도 사측은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제 준수했을 때 야근·주말근무가 많은 기술부 직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이들을 보호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안으로서 간주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고 해명했다.
또 “직원들의 번아웃을 막기 위한 취지로 함께 모색한 결과이며, 직원들이 먼저 간주근로시간제를 제안하기도 했다”며 “수차례 간담회·논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강제성이 없었다고 일축했다.
다만 사측은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임을 인지하고, 기술부 직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스터 관계자는 “A/S 콜센터를 적극 운영해오면서 현장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려 노력 중”이라면서 “아직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도 있어 앞으로도 노조 등과 최선을 다해 협의해나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