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전공의가 복막염을 맹장염으로 오진해 환아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병원이 3억 5134만원의 손해배상을 하게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는 급성 충수염 수술 뒤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환아 유가족이 A상급종합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손을 들어줬다.
2017년 이 사건 환아는 복부 통증과 구토 증상으로 A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당시 병원 응급실 담당의인 신경외과 전문의는 환아가 기능성 장마비로 인한 복통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 X-RAY 검사를 시행했다.
검사 결과, 환아의 장에 변이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한 의료진은 약물처방 후 보호자들에게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 정밀검사가 필요하므로 다시 내원하라고 안내했다.
이후 다시 내원한 환아에 대해 발열 증상을 확인한 의료진은 재차 X-RAY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소장의 기계적 협착이 의심되는 소견을 확인했다. 복부 CT 검사 결과, 전반적인 기계적 장폐색(mechanical ileus)으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태로 진단된 환아는 B병원 응급실로 전원됐다.
당시 B병원 응급실 당직의였던 인턴 C씨는 문진, 시진, 촉진 등을 실시했다. 당시 환아는 의식이 명료한 상태였으며, 복부 강직 소견 또한 없는 상태였다.
인턴 C씨가 진찰한 지 몇 시간 뒤, 의료진은 혈액감사와 복부 CT를 시행했다.
이어 C씨와 함께 근무하던 레지던트 1년차 D씨는 같은날 새벽께 환아에 대해 검진을 시행했다.
레지던트 D씨는 검진 결과와 앞서 A병원에서 시행한 복부 CT 사진을 바탕으로 환아에 대해 ‘국소 복막염을 동반한 천공 또는 파열을 동반 또는 동반하지 않은 급성 충수염’, ‘소장폐색증’, ‘장회전이상증의심’으로 진단하고 응급수술을 계획했다.
이날 아침, B병원 의료진은 환아의 급성 충수염에 대한 수술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개복 다량의 농이 흘러나오는 것을 관찰됐다. 이후 의료진은 충수돌기절제술을 시행한 이후 회복실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이후 구토를 하는 등 계속해서 상태가 악화됐고, 심박수가 급격히 높아지자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환아는 결국 사망했다.
환아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법의관은 “천공성 충수염에 기인한 급성 화농성 복막염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수술 술기 및 수술 후 환자관리 등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심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환아 유가족 측은 소송을 제기했다. A병원과 B병원 모두 내원 초기때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는 주장이다.
A병원에 대해선 “급성충수염을 진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혈액검사와 추가 영상검사 없이 복부 X-RAY 검사만을 시행했다”고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B병원에 대해선 “당시 급성충수염은 이미 복막염이 동반돼 있을 정도로 진행됐는데, 적어도 복부 CT검사 결과 직후 급성충수염에 대한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먼저 A병원에 대해선 “진료기록 감정촉탁결과 및 변론 전체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내원 당시 급성충수염 진단을 위해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하지 않은 진단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환아가 내원 당시 내원 당시 발열, 오심, 우하복부 통증 증상이 없었고, X-RAY 검사 결과 대장에 변이 조금 차 있는 정도에 장폐색 소견이 없었던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응급으로 초음파나 CT검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B병원에 대해선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당시 환아를 본 전공의 C씨와 D씨의 경우 오진한 과실이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진료기록을 살펴보면 망아는 B병원에 내원할 당시 범발성 복막염을 동반한 급성충수염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B병원 의료진인 전공의가 망아의 상태를 급성충수염으로 진단한 것은 오진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B병원 의료진인 외과 전공의 C씨는 망아(亡兒) 증상을 국소적 복막염을 동반한 급성충수염으로 잘못 파악해 외과 당직의에게 보고하고, 외과 당직의는 망아의 상태와 복부 CT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를 아니한 채, 전공의 보고 내용을 그대로 신뢰해 즉시 충수돌기절제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며 “이는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B병원 의료진이 망아 상태를 국소적 복막염을 동반한 급성충수염이 아니라 범발성 복막염을 동반한 급성충수염으로 진단해 즉시 수술했을 경우, 망아 증상 악화를 방지할 수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B병원 의료진의 사용자인 병원은 원고들에게 진료계약상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B병원은 총 3억5134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