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최근 국내 제약업계 화두는 ‘건전한 지배구조’다. ‘ESG 경영’(환경·사회·지배구조)이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제약업계에서도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이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제약업계 지배구조에 대한 전반적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많은 기업이 현재 진행형으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보다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되는 실정이다.
ESG 전체 평가·지배구조 관련 A+ 제약사 없어
금년 2월 22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발표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윤리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제약바이오기업 중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를 받은 47개 기업 중 A+ 이상 등급을 받은 제약사는 없었다.
제약사 중 가장 높은 A등급을 받은 기업은 10개였는데, 지주사를 제외하면 동아에스티, 삼성바이오로직스, 에스티팜, 일동제약, 종근당, 한독, 한미약품 등 7개사였다. B+를 받은 기업은 18곳, B는 8곳을 기록했으며 11개 기업은 가장 낮은 C등급을 받았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중 전체적인 양상과 가장 비슷한 흐름을 보인 것은 지배구조였다. 지배구조의 경우 A+를 받은 기업은 전무했다. 10개 기업이 A를 받았고 28개 그룹이 B+, 9개 기업이 B 등급을 받았다.
이와 관련, 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여전히 많은 제약사가 오너 중심 지배구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이사회와 감사 독립 역할과 기능이 미비했다”면서 “또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최고경영자 승계 정책, 내부 감사 독립성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서도 이 같은 평가를 만회하고자 ESG 경영 강화를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앞서 윤리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제약바이오협회가 3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ESG 관리를 위한 담당부서를 운영 중인 제약사는 20%, 준비 중인 제약사는 34.3%였다. 지속가능보고서 또는 관련 보고서를 발행하는 회사도 10곳이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2월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된 ESG 위원회를 신설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외이사들을 통해 ESG 관련 정책 수립 및 감독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유한양행과 동국제약, 광동제약 등이 ESG 경영관리를 전담하는 조직을 내부적으로 신설했다.
유한양행은 사장 직속 ESG 경영실을 마련했다. 각 부서 팀장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T) 사전 운영을 통해 ESG 경영실 신설을 준비해왔다. 오는 5월부터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기업 ESG 성과 및 철학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겠다는 계획이다.
동국제약은 부문별 ESG 사업 추진과 더불어 ESG 위원회 및 상설 실무조직을 마련한다. 지난해에는 오흥주 대표이사가 총괄하는 ESG TF가 운영됐다.
광동제약은 지배구조(G)보다는 환경(E) 분야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를 신설했다.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확대, 이사회 의장-대표이사 분리 중요
올해부터 바뀐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화’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부터 자산총액 1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법인은 지배구조보고서 공시를 통해 각 기업이 지배구조 관련 주요 사항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문제는 자산 1조원 이상 제약기업들이 지배구조 보고서가 요구하는 주요 핵심지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평균 이행률 62.8%로 전체 이행률 대비 낙제 수준인 60점을 겨우 넘겼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중 자산 1조원이 넘는 기업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녹십자홀딩스, 에스디바이오센서, 유한양행, 녹십자, 한미약품, SK바이오사이언스, 대웅, 동아쏘시오홀딩스, 대웅제약, 종근당홀딩스, 동아에스티, 종근당 등이다.
이들 중 현재 기업지배구조 보고서가 나온 곳은 총 7곳이다.
예전 기준이었던 자산 2조원 이상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녹십자홀딩스, 유한양행, 녹십자 등 5곳은 이미 보고서를 작성했고, 동아에스티와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자율공시를 통해 보고서를 발행했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는 주주·이사회·내부감사 등 3개 항목 15개 기준의 핵심지표 준수 여부를 담고 있다. 핵심지표 채택률이 기업 투명성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7개 기업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은 13개(86.7%)를 준수한 유한양행이었다.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셀트리온도 각각 11개(73,3%), 10개(66.7%)로 뒤를 이었다. 나머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9개(60%), 녹십자홀딩스·녹십자 8개(53.3%), 동아에스티 7개(46.6%) 등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앞으로 제약바이오업계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여부다.
올해 첫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를 진행할 한미약품, SK바이오사이언스, 종근당홀딩스 및 종근당의 경우 이사회 구성 핵심지표 중 하나인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 항목을 이행하지 못했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는 단기간 해결하기 어려운 까닭에 한동안 해당 항목을 준수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다만 제약업계 특성상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가 꼭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제약산업은 R&D 중심으로 업무가 이뤄지는 만큼 회사 파이프라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반응이다.
‘전문경영인 vs 오너’ & ‘체질 개선 vs 입지 공고화’
이처럼 지배구조 개선이 제약업계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제약업계는 ‘전문경영인’ 또는 ‘오너’ 체제를 놓고 저울질에 나섰다.
유한양행과 한미약품의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를 공고히했다.
유한양행의 경우 창업주인 故 유일한 박사 방침에 따라 오래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경우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다. 창업주인 故 임성기 회장 사망 이후 현재 부인인 송영숙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한미약품 회장을 맡고 있으며 아들 2명과 딸 1명도 모두 한미그룹 경영 일선에 참여 중이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실질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인 우종수·권세창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대웅제약과 안국약품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택했다. 대웅제약의 경우 지난 2018년 윤재춘 사장과 전문경영인인 전승호 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후 윤재춘 대표는 구랍 임기를 2년 남긴 채 사임했고, 대신 이창재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굳혔다.
안국약품의 경우 지난 3월 4일 창업주 어준선 회장과 장남 어진 부회장이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인 원덕권 대표가 취임하면서 53년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반면 일동제약과 셀트리온은 ‘오너가’ 역량 강화에 나섰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11월 30일 윤웅섭 대표이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오너 3세 경영이 본격화됐다.
셀트리온도 지주회사 통합과정을 마치면서 서정진 명예회장 장남인 서진석 수석부사장 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 셀트리온홀딩스 합병 이후 통합 지주회사에서 서 수석부사장은 대표이사를 제외한 유일한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서 수석부사장은 올해 3월 셀트리온홀딩스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셀트리온 및 셀트리오제약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또한 셀트리온스킨큐어와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에서도 비상무이사로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의 이사회를 장악한 셈이다.
다만 서 수석부사장에게는 아직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셀트리온헬스케어의 상장 3사 합병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
이 사안은 금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다뤄질 예정이었지만, 2월 공개된 3월 정기 주총 소집안에서 해당 안건이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셀트리온이 자가주식 취득을 마친 뒤 본격적으로 3사 합병이 추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외에도 보령제약은 지난 1월 오너 3세인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이사가 보령제약 사장에 선임되면서 본격적인 경영 승계 체제에 진입했다. 한독 역시 오너 3세 김동한 상무가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 승계 작업이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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