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가정의학실습기간 중 환자들이 본인의 의료기록을 받지 못한 채 퇴원하는 것을 목격했다. 심지어 환자들은 본인의 약이 변경됐는지 여부나, 퇴원 후 관리 등에 대해 스스로 기억하지 못했고 주치의가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예시에서 시스템적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울혈성심부전과 급성신부전 합병으로 오랜 기간 입원했던 70세 남성이 퇴원했다. 그러나 그는 퇴원 후 4일만에 다시 응급의료센터로 실려왔고 중환자실에서 일주일간 입원했다. 알고 보니 남성은 처방약 중 몇 가지를 형편이 어려워 복용하지 못했고,증상 관리에 필요한 저염식을 살 수 있을 만한 생활 환경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환자의 재입원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 퇴원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과대학 학생 교육에 있어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외에도 보건의료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과학'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료시스템과학이란 미국 의대에서 적용 중인 'Health systems science'를 직역한 것으로 보건의료 구조와 제공체계, 인구집단건강, 보건의료정책과 경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보건의료 질 향상, 임상정보학, 보건의료시스템사고 등에 관한 교육을 일컫는다.
선택과목 등의 부차적인 방식으로 보건의료정책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의학-임상의학-의료시스템과학을 각각의 한 축으로 두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다양한 사례에 대한 교육을 시행하는 것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최근 의료와 사회의 통합적 이해와 실천을 위한 보건의료시스템과학 교육체제 구축 사업 연구를 통해 "20년 전부터 의료인의 사회적 책무성이나 보건의료 전달체계 등을 강조하는 교육과 훈련이 도입됐지만 주로 의료서비스 공급자 관점이었으며 의학교육의 전체적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시스템과학은 기초의학, 임상의학에 더해 의학교육 제3의 기둥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의과대학 교육 단계에서 시작해 졸업 후 수련교육 단계까지 연계성을 갖고 체제가 구축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서부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UCSF)에서는 임상 진료 술기와 함께 의료시스템 향상 기술과 환자안전 등을 통합적으로 배우고, 임상실습 기간에도 의료시스템 과학 관련 이슈를 경험하도록 교육 과정이 구성돼 있다.
메이요 클리닉 알릭스 의과대학에서는 1학년과 4학년에게 기초보건경제학과 보건정책, 임상정보학, 의료법 등을 가르치며 가치기반 진료 영역을 위해 1~2학년 때 기초의학 통계 및 역학을 교육하고 3~4학년 임상실습 과정에서 진단 오류를 최소화하는 등의 교육을 시행 중이다.
이밖에도 미시간의대, 뉴욕의대, 벤더빌트의대 등 다양한 곳에서 의료시스템과학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팀은 "국내서도 의료시스템과학 교육 내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대 교육과정에 이미 반영돼 있으므로 기초의학-임상의학-의료시스템과학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전면개편과 다양한 선택 교과목을 개설하는 부분개편의 두 방식을 택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전면개편의 경우 의료시스템과학 개념을 적용한 교육과정을 새로이 신설해야 하는 만큼 준비 기간이 길 수 있다.
부분 개편은 의예과 초반에서는 의료시스템과학을 강의 형식으로 시작하고, 임상 교육 시기에 토론식 강의를 진행하다 환자 진료를 시작하는 본과 임상교육 시기에 사례 중심 시뮬레이션 교육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만약 이를 시범사업으로 적용할 경우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6개월 간의 예비기간, 4차 년도의 선도사업, 이후 6개월 간의 평가가 이뤄지는 방식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현재 의학교육은 건강과 환자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결정요인, 의료전달체계, 의료불평등, 의료비용 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며 “현대 의료는 만성 건강 관리 요구에 따른 부담 증가로 의료시스템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래진료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 다학제 의료팀의 기능 등 21세기 의료의 전환을 맞아 의학교육은 새로운 플랫폼을 요구하고 있다”며 “의료시스템과학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