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구교윤 기자] 바야흐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춘추전국 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이후 비대면 진료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비대면 진료는 한시적으로 허용된 만큼 지속성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어느새 국내 산업 한 축을 이루는 거대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특히 무조건 반대를 외치던 의료계에서도 기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다, 새 정부가 제도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편집자주]
3일 데일리메디가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업체를 조사한 결과, 약 28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대면 진료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건강관리, 상담 등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까지 더하면 숫자는 배가 됐다.
업체들은 2020년 2월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존에 단순히 진료 예약 등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체들도 비슷한 시기 비대면 진료 기능을 추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들이 우후죽순 늘어난 이유는 그만큼 증가한 수요에서 비롯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는 총 443만여 명이다. 2020년 2월 2만여 명에서 180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매일 평균 5000명이 넘는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은 셈이다.
비대면 진료는 절반 이상이 의원급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우리나라 한시적 비대면 진료 동향'을 살펴보면 의료기관 종별 비대면 진료 활용 비율은 의원급이 62%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종합병원(22%), 상급종합병원(10%), 병원급(6%) 순으로 파악됐다.
비대면 진료 최초 닥터나우, 월 5만 명 사용 등 점유율 1위
비대면 진료 수요는 업체들의 고른 성장을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닥터나우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닥터나우는 4월 기준 누적 사용자 400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900여 개 의료기관과 제휴 중이다. 닥터나우 월간 이용자 수가 5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닥터나우는 제휴 의료기관 수익에도 기여하며 상생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닥터나우에 따르면 올 1분기 제휴 의료기관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95% 급증했다.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닥터나우는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유수 벤처캐피탈에서 100억원대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닥터나우는 현재 업계 최초로 타 기업을 인수에도 나서며 사세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닥터나우는 최근 헬스케어 스타트업 '부스터즈 컴퍼니'를 인수하고 종합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닥터나우 뒤는 올라케어와 솔닥이 바짝 좇고 있다.
지난해 8월 서비스 시작한 올라케어는 올해 하루 평균 진료건수가 작년 대비 2481% 늘었다. 일 사용자 수는 1만5000명 규모다. 솔닥도 4월 평균 처방건수가 지난 1월 대비 317% 증가하며 고성장을 이루고 있다.
진료 예약 기능을 제공하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추가한 굿닥과 똑닥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굿닥은 지난 2월부터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시작한 굿닥도 론칭 한 달 만에 누적 이용자 수가 16만 명을 넘어섰다. 비슷한 시기 서비스를 추가한 똑닥도 7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탈모·한방 등 특정 질환 타깃으로 차별화 모색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발주자들은 특정 질환을 타깃으로 하는 등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먼저 썰즈는 탈모, 여드름, 수면질환 등 남성에게 필요한 질환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지난해 4월 설립한 썰즈는 현재 누적 이용자 수가 4만명을 넘어섰으며 최근에는 아이디벤처스, 제이커브인베스트먼트 등에서 프리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모두약, 홀드도 탈모 전문 비대면 진료를 내세우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메듭의 경우 2km 이내 병원과 약국을 연결하는 ‘지역 기반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파닥은 한의원 비대면 진료 서비스와 한약 처방으로 경쟁 업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닥터콜은 서울성모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상급종합병원과 연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바로필은 맞춤 영양제 상담, 닥터온은 유전자 검사 등을 제공하는 등 각기 다른 특색을 갖추고 있다.
비대면 성병검사를 서비스로 내놓은 체킷도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 대다수 업체가 주말·야간 진료 등 소비자 유치를 위한 내실화에 역량을 쏟고 있다.
의사·의대생 등 참여, 경쟁력 구축 기여
업체 중에는 현직 의사를 비롯해 의대생, 약사 등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도 적잖았다.
이들은 현업에서 몸소 체험한 고충을 서비스에 담아내며 자체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먼저 솔닥 이호익 대표는 가천대학교 의전원 출신으로 현재 피부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나만의닥터 선재원 대표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며, 메디팡팡 조인산 대표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왔다.
엠디톡 오수환 대표는 서울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치과의사이기도 하다.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와 메디버디 안준규 대표는 각각 한양대학교 의과대학과 경상대학교 약학대학을 다니고 있는 재학생이다.
이밖에 솔닥에서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김민승 대표와 닥터온 김기영 대표는 삼성전자, 메디히어 김기환 대표는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서 근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비대면 진료 시장이 성장하면서 업체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지만 대부분 투자금 외에 특별한 수익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시장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현행법상 업체들이 중개 수수료를 받을 수 없는 데다 고객 유치를 위해 대부분 약 배송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아직까지 수익 창출보다 고객 경험을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만큼 출혈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대면 진료뿐만 아니라 다른 헬스케어 서비스도 구축해야 한다"며 "일정 수준 자리를 잡으면 광고 등 여러 수익모델을 추진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업계 고충에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면 비대면 진료는 사실상 종료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이었나 최근 정부가 직접 나서 제도화에 의지를 드러낸 상황이다. 특히 '무조건 반대'를 고수해온 의료계가 입장을 완화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새 정부는 3일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보건의료 분야 난제 해결을 위해 혁신적 연구개발체계인 '한국형 Arpa.H'도 구축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의료취약지 등 의료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상시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 대해 일차의료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의료계도 변화하고 있다. 먼저 대형병원 쏠림이나 약 오남용, 오진 등을 이유로 줄곧 반대했으나 최근 대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의협은 최근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원격의료 시행을 대비해 주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자는 안건을 의결하고 동네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이 주체가 되고 대면 진료보다 1.5배 수가를 올려받는 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실질적인 논의를 위해 의료계와 협의체를 꾸려 내달 초 첫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다만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더라도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다는 게 현 정부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 보조수단으로 규정해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초진이 아닌, 반복 진료가 필요한 일부 만성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약계는 비대면 진료 허용과 약 배달 플랫폼 운영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업체 불법 행위가 도를 넘어섰고, 조제약 배달 전문 약국까지 등장할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게 주 골자다.
실제 대한약사회는 3일 제2차 이사회에서 정부 약 배송 허용, 화상투약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돌입을 알렸다.
최광훈 회장은 이날 5인 공동 비대위원장을 발표하면서 “약사회는 화상투약기와 비대면 진료, 약 배달 플랫폼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