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장기간의 감염병 유행은 우리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데일리메디가 만난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박중철 교수는 최근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라는 저서를 통해 병원에서 만나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전했다. 박 교수는 다소 생소한 인문사회의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성숙한 죽음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Q. 최근 출간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라는 책 제목이 인상 깊다. 본인이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이란
내가 생각하는 친절한 죽음은 3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사회와 가족들 죽음에 대한 태도 및 병원과 의료진 죽음에 대한 태도, 끝으로 자신의 죽음을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다. 이 세가지가 모두 불친절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죽음이란 고통 없이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내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맞이하는 죽음이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4명 중 3명은 병원에서 죽고, 그들 중 상당수는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인공영양이나, 중환자실 치료 등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으며 가족들과 떨어진 채 외롭게 죽어간다.
병원과 의료진은 환자보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연명의료라는 의학적 폭력을 가하고 있어서 불친절하고, 사회와 가족들 역시 삶 속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대화를 감춘 채 늙지 않는 삶 만을 좇고 있기에 불친절하고, 끝으로 개인 역시 죽음이 다가오면 모든 일상을 놓고 끝까지 죽음과 맞서기 때문에 불친절하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필연적인 삶의 마무리이자 결과이고 완성이다. 그런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하고 오늘의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원천으로 수용하는 것이 죽음을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Q. 집필 계기는
지난 20년 넘게 국내 섬마을 오지, 해외 재난 현장, 요양원, 요양병원,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을 모두 겪었다. 7개월 조산아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죽어가는 순간에 깊은 후회를 남기는 것을 비일비재하게 봐 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건강식품과 늙지 않는 항노화 의학에 매달리고, 성공된 삶에 집착하는 우리사회의 모습이 불안하고 기만적으로 느껴졌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규모 10위 권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지만, 삶의 행복지수와 죽음의 질 지수는 형편없이 낮다. 여기에 자살률은 부끄럽게도 세계 1위다. 모순으로 뒤덮인 사회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느꼈다. 사회 현상에 대한 실마리를 죽음에 우리들의 불친절한 태도에서 찾아보는 작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통해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삶의 목표를 영원한 젊음과 화려한 세속적 성공에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다. 잘 살아온 삶에 어울리는 좋은 죽음이 우리가 스스로 도전하고 이뤄야 할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현재의 과열된 생존경쟁이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Q. 책에 실린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후속작업으로 제게 삶을 알려준 스승과 같은 환자들 이야기를 엮어볼 생각이다. 그런 연유로 책에 싣지 않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 4살, 6살 두 딸을 둔 30대 젊은 말기 위암 엄마가 있었다.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병원 입원을 미루고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면 이제 죽으러 가는 것이고 영영 못 나온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그러나 콧줄을 넣어 소장액이 자연스럽게 배액이 되고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이 사라지면서 차츰 기력을 회복하게 됐다. 퇴원한 뒤 가정호스피스팀과 방문해 보니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며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 기억에 피아노를 치는 엄마 모습을 남겨주고 싶어했다. 이후 1주일 뒤 집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뒀다. 그 분은 마지막까지 엄마라는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한순간도 허투루 소비하지 않고 모두 기적 같은 시간으로 살아 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용기있는 삶의 마무리는 살아가는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 블루 증가, 자신 성찰 계기 활용 필요”
“일상 속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사유해야”
“연명의료 제도 시행 후 우리나라 의식 수준 높아져”
“인문사회의학, 아직은 생소한 영역”
Q. 소위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환자들 가운데서도 우울감을 밝히는 경우가 늘었는지 궁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의 삶이 대폭 제한되면서 실존의 가능성이 닫히고, 자신의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에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다. 어르신들이 더 그렇다. 그분들에게는 하루하루 매 순간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들이니 말이다. 전쟁이나 감염병 팬데믹과 같은 재난 상황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존에만 전념토록 강제한다. 존재 이유와 가치가 오로지 생존이 되면 인간은 스스로 존엄을 확신하지 못하게 되고, 정서적인 고통을 겪게 된다. 반대로 이는 얼마나 삶의 자유가 소중하며 매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고 사유하는 ‘메멘토모리’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연명의료 결정 제도 시행 이후 우리나라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 보는지
확실히 많이 높아졌다. 그동안 일상에서 꽁꽁 감춰두었던 내 죽음에 대한 나 자신의 결정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많은 국민들이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 결정을 사전에 미리 서면으로 명시해두고 있다. 국민들 인식 특히 어르신들께서 이제 용기를 내 본인 삶의 마무리를 이야기하고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에 비하면 의료인과 병원의 연명의료를 비롯해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대부분의 의과대학과 병원은 죽음 관련 교육을 하고 있지 않으며, 연명의료결정법 역시 번거로운 서류와 동의서 작성 업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살아야 할 환자를 살려서 실존 가능성을 되찾아주는 것 만큼이나 존엄한 죽음을 통해 삶의 완성을 돕는 것도 중요한 의학의 사명임을 이제는 병원과 의과대학, 그리고 의료인들이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Q. 인문사회의학 박사과정을 공부했는데, 해당 분야 관심을 갖는 의사들이 많은 편인지
인문사회의학이라는 학문영역이 아직은 생소하고, 현재 그 틀과 내용을 만들어가는 성장과정이어서 공식적인 학위과정의 기회가 제한적인 측면은 있다. 저는 인문사회의학을 전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 의학전공은 가정의학이다. 가정의학과 의사로 임상현장에서 많은 경험들을 쌓으면서 환자의 신체적 질병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도 발견하게 됐다. 살면서 죽음을 극도로 부정하다가 병원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한국 사회의 죽음 모습이 문제 의식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그 대답을 찾고, 스스로 그런 문제의식을 발판삼아 성장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인문사회의학이라는 공부에 도전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얻었다기 보다는 문제에 대한 정보를 찾고,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역사적, 철학적, 사회작적, 교육학적 탐구방법을 박사과정에서 연습했던 것 같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자체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보다는 임상의사 삶에 충실하다가 열병이나 몸살처럼 의료현장 문제의식이 내 안에 차올랐을때 그에 대한 답(答)을 찾는 통로로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문제의식이 전제되지 않은 공부는 그저 자기 성공의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Q. 학위 논문도 '죽음의 의료화'. 전공 당시에도 병원서 일어나는 죽음에 관심이 높았나
앞서 말씀드렸듯 죽음의 문제는 제가 지난 20여년간 임상의사로 살아오면서 반복적으로 겪고 고민하고 갈등했던 문제였다. '이렇게 죽어가는 것은 당연한 거야' 라며 머리 속에서 억누르고 망각하면서 의사로서의 성공에만 열심을 내며 살 수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다가올 내 자신과 내 가족들의 죽음을 떠올리게 되니 이렇게 시류에 휩쓸린 채 마냥 생각을 닫고 살 수는 없었다.
당시 근무하던 병원을 그만두고 6개월 가량 혼자만의 휴식기간을 가지면서 난생 처음 이런 저런 철학서적과 사회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이가 들어 청년을 거쳐 장년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러운 관심사의 변화이자, 소위 성인 발달 과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듬해 용기를 내 학위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Q. 환자 죽음에 대해 보호자와 의료진, 병원이 현명히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자 자연스러운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감동적인 소설은 감동적인 결말로 완성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삶 역시 좋은 마무리를 통해 완성된다. 마무리를 생각하지도 않고 마무리를 수용할 생각도 없는 삶은 결국은 좋은 삶으로 남을 수도 기억될 수도 없다.
세상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는 자신을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내게 불운이 따라서 사고나 질병으로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 노쇠의 과정을 밟으며 자기 죽음을 예견하게 될 나이가 된다면 저는 제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세상 속에 티끌 같은 피조물의 삶이지만 스스로 가치있었다라는 자존감을 느끼며 삶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의료진도, 병원도, 가족도, 환자도 모두 죽음을 피해야 하는 재앙이 아닌 완성해야 할 삶의 수행과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국사회에 성숙한 죽음 문화와 더불어 행복한 삶의 문화 역시 더욱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