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신장실 의사 인력기준을 놓고 학계와 병원의 신경전이 심화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중간에서 난감한 상황에 놓인 모습이다.
보다 안전한 인공신장실 운영을 위해 고심 끝에 권고안을 마련했지만 학계와 병원들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진퇴양난 상황에 봉착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 세부기준 권고안’을 마련하고 유관단체와 혈액투석 의료기관 등에 대해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권고안에 따르면 인력기준에 혈액투석 의사 자격을 신설했다. 인공신장실에 혈액투석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를 두도록 하는 게 골자다.
해당 의사 자격은 ‘신장학 분야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 후 1년 이상 투석 임상경험을 쌓은 의사이며, 정기적으로 교육을 수료해 전문의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즉 신장내과 전문의 그리고 내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취득 후 혈액투석 분야를 1년 이상 수련한 의사로 자격을 제한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병원계는 비현실적 기준이라며 반발했다. 신장내과를 세부 전공한 내과의사 수급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관련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관련 의사인력 배출 규모와 양성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력 수급 가능 등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우선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반면 대한신장학회는 해당 권고안 도입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신장질환자들이 보다 안전한 혈액투석을 받기 위해서는 인공신장실 질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혈액투석 전문의 배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병원계 지적을 알고 있지만 투석실 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신장학회 관계자는 “권고안은 강압적 조치가 아닌 최소한의 기준”이라며 “의견 교환을 통해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권고안을 놓고 의료계 내부적으로 갈등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는 일단 가이드라인 발표를 잠정 연기하고 관련단체들과 논의에 들어갔다.
복지부는 최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과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기준 권고안’을 놓고 협의를 진행했다.
의사협회는 이 자리에서 의사면허 취득 후 해당 진료를 위해 연수 등 일정 교육을 받으면 모든 진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즉 특정 세부분과 전문의로 인력기준을 한정할 경우 투석환자의 접근성이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지역별 전문의 수급, 환자 진료량을 고려해 유연한 인력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병원협회 역시 내과와 소아청소년과로 의사 인력기준을 제한한 것에 반감을 나타냈다.
신장내과 분과전문의 제도가 1999년 시행된 점을 감안하면 해당 인력에 대해서만 투석전담의로 인정하는 것은 환자의 투석진료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신장학회는 미국, 독일, 싱가폴 등 해외 각국이 인공신장실 허가·인증제를 운영 중인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는 기필코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장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요양병원 절반 이상이 투석 전문의를 한 명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투석 안전성을 위한 표준화된 기준 및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신중론을 견지했다. 일단 인공신장실 설치 및 운영기준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판단, 세부 기준을 다듬어 최종 권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