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은 지난 20년 간 국내 사망률 1위 질환이다. 매년 환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조기진단 기술 및 정밀 맞춤치료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특히 폐암 영역에서 표적·면역치료제 등 혁신적인 치료제와 첨단 술기가 등장하며 의료진과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지난 2년 간 코로나로 인해 제한됐던 일선 치료 현장도 일상 회복에 접어들며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치료법 발전에도 불구하고 높은 약가로 인한 환자들의 접근성 제한과 최신 치료법과 보험심사 기준 간 괴리가 존재하는 실정이다. 데일리메디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폐암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학병원 교수들을 만나 국내 폐암치료 환경 변화에 대한 진단 및 향후 개선 방안 등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편집자주]
1) 이승룡 고려대구로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2) 이재철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3) 엄중섭 부산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4) 박순효 계명대동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5) 오인재 화순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폐암 치료는 타이밍 싸움이다. 정확하고 신속한 진단 후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면 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일상생활도 유지될 수 있다.
사망률 1위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가진 '폐암'도 시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뇨와 고혈압처럼 만성질환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다.
이 같은 폐암 치료 패러다임 변화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은 새로운 흐름에 맞춰 폐암 치료의 선도적인 의료기관으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
박순효 계명대동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대구지역 환자들이 서울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대로 진단받고 다양한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진단 필수…유전자 검사 23일 이내 단축 "
계명대 동산병원은 정확한 암 진단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서울 대형병원들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진단기기들의 도입을 검토하고, 환자들의 신약 사용을 위한 유전자 검사(NGS) 기간도 단축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진단기술이 소개되면 우리 병원에 도입할 수 있도록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진단업체에 미리 연락해 장단점 및 특징 등을 검토한다"며 "표적치료제 등 신약 사용을 위해선 NSG 검사를 통해 타깃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통상 5주 기간을 23일로 줄였다"고 말했다.
NGS 검사 기간을 단축하면 환자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뒤 바로 치료에 돌입할 수 없다. 환자가 약물치료를 견딜 수 있는 건강 상태를 갖춰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폐렴이 있거나 염증이 있을 경우 약물로 조정하기도 한다. 검사 기간 단축은 가장 첫 번째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학제 협진'도 폐암 진단 및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상의학과, 흉부외과, 혈액종양학과, 방사선종약학과, 호흡기내과, 병리과 등 여러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전략을 세운다.
매주 목요일 아침에 열리는 폐암종양집담회에선 7개 진료과 교수 20여명이 참여해 환자 리뷰를 진행한다. 환자와 보호자도 함께하는 집담회도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마련된다.
그는 "진단이 안 되면 신약 사용이 가능한 환자인지, 아니면 다른 병원에 보내야 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고 빠른 진단을 위해 진단기기 업그레이드, 다학제 진료 등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약 접근성 개선 노력… 다양한 신약 임상시험 유치
계명대 동산병원은 폐암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도 적극적이다. 폐암 분야에서 치료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낮춘 혁신 신약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을 비롯해 모든 세포를 공격하던 항암 치료에서 특정 암 세포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를 통해 정밀의료,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졌다.
박순효 교수는 "표적항암제의 경우 타그리소, 지난해 출시된 국산 신약 렉라자까지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면역항암제 '티센트릭', '타브렉타' 등의 혁신신약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환자들이 가까운 지역 대학병원에서 신약을 사용해볼 수 있도록 임상시험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며 "아울러 경북지역 내 대학병원들과 함께 1차 약물 치료를 진행한 환자들 중 뇌전이가 있는 환자들에 대해 뇌 혈관 장벽을 잘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진 3세대 표적항암제인 레이저티닙이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코자 한다"고 부연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혁신 신약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진다. 일본, 미국과는 달리 충분한 임상시험 결과를 확보한 약만 환자에게 투약토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말기암 환자나 더 이상 치료법이 없는 환자들에 대해선 보다 유연한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의료라는 게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원칙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고, 치료 시기가 생존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금 유연하게 제도를 운영하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물론 사전심사신청 등 조금 더 약을 빨리 쓸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임상연구라는 게 결국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실시하는 것인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한 명의 환자도 치료할 수 없을 때 열의가 꺾인다"고 토로했다.
"고령 암환자, 5~10년 이상 생존 목표 시 지방대학병원 치료 권고"
폐암 진단을 받으면 대다수의 지방 환자들이 서울로 상경한다. 그러나 고령이거나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라면 오히려 지역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1년 생존이 목표라면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나 3년 아니 5~10년을 사는 게 목표라면 편하게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KTX로 2시간이면 대구에서 서울을 가지만 막상 아프면 기차를 탈 수 없다. 그래서 고령 환자의 경우 참다가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환자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며 "일부 보호자들이 지역 대학병원을 불신하며 무작정 노모를 서울로 모시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것이 실제로 환자를 위하는 것인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방대학병원도 이런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진료 질을 높이고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동산병원은 환자 생존율 개선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는데도 주안점을 두고 치료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