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은 했지만 상흔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답정녀’라는 시쳇말처럼 이미 인상률을 정해 놓고 받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듯 윽박지르는 행태에 큰 반감을 나타냈다.
지난 달 진행된 2023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에 병원계 대표로 협상에 나선 대한병원협회 송재찬 수가협상단장(상근부회장)은 단단히 작심하고 발언을 이어갔다.
보건복지부 관료 출신 시각에서 보더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고, 공급자인 의료기관은 억울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송재찬 부회장은 “정부는 늘 밴드(추가재정소요액) 수준 내에서 제시 가능한 인상률은 어느 정도라는 통보에 가까운 진행으로 협상 의미가 상실된지 오래”라고 힐난했다.
특히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이거나 제시한 수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로 협상 대상자들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대한병원협회는 이번 수가협상에서 전년대비 1.6% 인상에 합의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는 건보공단의 제안을 불가피하게 수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1년 동안 준비한 자료와 공시, 이를 방증할 연구결과까지 제시하며 병원계의 고충을 설명했음에도 협상 테이블에서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건보공단은 추가재정으로 책정된 1조848억원의 45.6%에 해당하는 4949억원이 병원계 몫으로 배정됐다는 단편적 논리만 고집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병원계 진료비 증가를 지목했다
하지만 병협은 진료비 증가분 40% 이상이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결과이며, 손실보상은 감염병 의료기관의 운영비 성격이지 의료수익과는 무관하다고 읍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송재찬 부회장은 “의원 수가가 병원보다 높아진 수가 역전현상으로 지불체계 붕괴 및 의료진 이탈 현상 등 부작용이 심각해 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제는 임계점에 달한 만큼 적극적 개선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며 “현행 유형별 수가계약제도 하에서 수가 역전현상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수가계약 개선을 위한 여러 방안을 제언했다.
우선 임금 인상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 인상률을 강요하는 현실을 감안, 적정 원가를 기반으로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형태로의 수가계약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송 부회장은 “원가에 기반해서 현행 환산지수를 재산출하거나 기존 SGR 모형에 ‘원가보전 지수’ 등을 추가해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병‧의원 수가 역전 현상과 관련해서는 ‘환산지수 단일화’를 제안했다.
그는 “수가 역전현상 해소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태의 단순 숫자상 단일화가 아닌 적정 원가에 기반한 병‧의원 단일 환산지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종 감염병 상황에 맞는 별도 협상기준 마련도 주문했다.
감염병 유행 시기마다 진료비에 큰 변동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단순한 진료비 증감을 기준으로 환산지수 인상률을 산출하기 보다 물가 인상률 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일방적이 아닌 계약 당사자로서 동등한 입장에서의 협상 방식을 촉구했다.
송재찬 부회장은 “마지막날 밴드 확정 후 협상을 진행하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밤샘 협상 및 인상률 통보식 협상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전에 밴드를 설정하고, 추가적인 재정 투입에 대해 건보공단 협상단에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통보가 아닌 실질적인 협상이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밴드 설정 사유나 배경 등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통해 수가협상 상대방인 의료공급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