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수첩]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정보의학전문위원회를 발족했다. 의료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향상시킨다는 취지다.
의사협회에 따르면 정보의학전문위원회는 비대면 진료를 비롯한 의학정보원 설립, EMR 인증, 의료플랫폼 구축, 공적 전자처방전 등에 관한 업무를 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정보와 관련한 정부사업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협의 방침은 고무적인 변화다.
의협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대해서는 반대를 내세웠다. 전화처방이 시작된 코로나19 유행 기간에도 환자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에도 의협은 "합리적 검토 없는 원격의료 및 비대면 플랫폼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며 당시 산업계를 대상으로 한 원격의료 관련 대선 공약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비대면 진료 경험이 확대되고, 정부에서도 제도화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의협의 ‘전면 반대’는 사실상 명분을 잃었다.
때문에 지금에라도 전문위원회를 통한 정책 개입을 결정하고 입장을 선회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위원회가 출범한 만큼 구체적인 운영방침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의협은 비대면 진료 추진에 있어 주도권을 갖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시 1차 의료기관이 실험적 무대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협은 이익단체로서 의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한편, 비대면 진료 활용이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현 의료전달체계에서 오는 애로사항을 해소해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의협의 역할은 ‘개척자’보다 ‘길잡이’가 적합하다. 의협은 모든 비대면 진료를 아우르는 독점적인 플랫폼 개발이나 데이터의 통제 등 혁신적인 무언가를 지금 당장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그 같은 시도는 이미 너무 많은 헬스케어 기업들이 경험하고 시도하는 탓이다. 의협이 나서 또 다른 기업을 자처할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협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가 단체로서의 게이트키퍼와 가이드라인 제시에 있다.
일례로 최근 복지부는 보건의료발전협의체에서 "한시적 비대면 진료 중계 플랫폼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곧 비대면 진료에서 활용될 플랫폼들의 표준안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다.
수 많은 병의원 의료데이터와 각기 다른 진료행태를 다루게 되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 표준안은 진료지침과 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협은 표준이 될만한 새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어떤 표준안이 바람직한지에 집중해야 한다.
표준안에 의료계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면 진료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는 플랫폼 생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이는 학회가 진료지침을 통해 약제 쓰임새를 결정할 뿐 약제 자체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비대면 진료의 실현을 바라던 의료산업계는 의협과 같은 전문가단체 참여를 희망해 왔다. 의협 또한 전문위원회 발족을 통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가 다양한 진료모델을 실험하고, 잘못된 점을 짚어내야 하는 시점이다. 비대면 진료가 독(毒)이 될지 약(藥)이 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한 의협의 나침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