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 1세대 경영자로서 한 획을 그었던 큰 별이 졌다. 53년 간 안국약품을 이끌며 제약산업계 발전에 이바지한 어준선 명예회장[사진 左]이 향년 85세 일기로 타계했다.
1937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한 고(故) 어준선 명예회장은 대전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농, 오양공사에서 일을 하던 중 서울약품의 파견관리이사를 맡은 게 인연이 됐다.
1969년 경영이 부실했던 안국약품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약인의 길을 걸었다. 고인은 국민건강에 이바지 한다는 신념으로 다양한 의약품을 개발했다.
그 첫번째 성과가 기침약 '투수코친'이다. 안국약품은 19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에도 불구하고 '투수코친'을 광고해 당시 중앙정보부로 소집되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기업 광고의 당위성을 설파했던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후 고인은 안국약품의 대표적인 제품이자 브랜드로 '토비콤'을 선보여 히트쳤다.
고인은 회사 성장과 함께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향남제약공단을 개발해 중소제약회사의 GMP 공장건립 문제를 해결했다.
2009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생동시험 파문, 포지티브 리스트 등 제약산업이 3중고를 겪고 있을 때 제약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그 누구보다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제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외국에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는 ‘자산재평가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를 시켰다.
의약분업이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인한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1년 연기해 안정적으로 의약분업을 시행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그는 의약품 개발을 진두지휘하면서 푸로스판, 애니펜, 레보텐션, 시네츄라, 레보살탄 등 차별화 된 전문의약품을 출시한다.
특히 레보텐션은 ½ 용량으로 동일한 효과를 발현하는 이성질체 의약품으로 2006년 발매 당시 매우 차별화되고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1위 기업인 화이자가 자사의 노바스크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해 2년간의 싸움 끝에 승소했고 CCB(칼슘채널블로커) 고혈압약 시장에서 대표적인 약품으로 성장시켰다.
이후 지속적으로 차별화되고 안전한 의약품의 개발과 생산을 위해 노력했으며, 유사 매출 규모의 제약회사보다 10~20% 이상의 연구개발비 투자가 이를 증명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중 하나가 진해거담제 시장에서 판매 1위를 하던 푸로스판의 급여제한 조치에 대응해 개발한 '시네츄라시럽'이다.
시네츄라는 국내 천연물 5호 신약으로 기존 푸로스판과는 차별화 된 국산 신약이다. 당시 안국약품과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천연물 신약을 발매한 유래가 없다.
시네츄라는 발매 1년만에 연매출 300억대 제품으로 성장을 한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어 회장은 바이오 분야에도 직접적인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게 된다.
바이오 분야에 대해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간접투자할 때 고인은 과감하게 바이오의약본부를 수립하고 연구인력을 채용하며 구로디지털단지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직접 투자를 단행했다.
연구 도중 어려움도 있었으나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바이오 연구를 지원했고, 그 결과 이중 및 다중항체 개발을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우수의약품 개발과 보급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어준선 명예회장은 2001년 대한민국 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후학을 위한 지원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모교인 보은중학교와 중앙대학교에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했다.
안국약품 창립 61주년, 어준선 회장 대표이사 취임 51주년을 맞은 2020년에는 Total Healthcare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안국약품 2030 뉴비전”을 선포했다.
안국약품은 안전하고 차별화된 헬스케어 제품을 제공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k-Health'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평소 고인은 임직원들에게 '主專自强成(주전자강성)'을 강조했다. '자기업무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전문성을 키우면 자신감이 생겨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세를 주문했다.
고인의 안국약품에서의 53년도 이런 주전자강성의 자세로 도전한 결과다.
또한 어 명예회장은 현장 중심 경영을 강조해 영업, 마케팅 직원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대표 재임 초기부터 영업부 직원들과의 자리를 많이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기울였다.
국회에서 회사로 돌아온 후에도 영업부 임직원과의 자리를 마련하여 격려하고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한편, 고인은 부인 임영균씨와 아들 어진 안국약품 부회장, 어광 안국건강 대표, 딸 어연진, 어명진, 어예진 해담경제연구소장 등 5남매를 두고 있다.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7호다. 영결식은 6일 오전 6시이며, 발인은 오전 6시30분 진행 될 예정이다. 장지는 충북 보은군 탄부면 매화리 선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