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결국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사 인력 부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최초 뇌혈관질환 전문기관, 대형병원 찾다가 골든타임 놓치는 경우 비일비재"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대규모 상급종합병원임에도 당시 해당 간호사에게 필요했던 개두술을 집도할 수 있는 의사가 단 2명 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필수의료 분야 인력 확대를 위해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신경외과에서도 고난이도 수술로 평가받는 개두술을 진행할 수 있는 의사가 4명이나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 있다. 국내서 유일하게 4회 연속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명지성모병원이다.
명지성모병원 허준 의무원장은 해당 사건을 두고 “너무 안타깝지만 의료현장에서 비일비재한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의료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언론에 주목을 받아 커진 것이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사고는 대형병원에서 비일비재하고 워낙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에 대한 인식 저조, 범정부적인 홍보 시급”
지난 2011년 국내에서 최초로 보건복지부 지정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선정된 명지성모병원은 대학병원과 견줄 정도로 많은 뇌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한해 명지성모병원을 방문한 외래 환자는 18만명이었으며 코일색전술이나 스텐트 등 뇌혈관내 시술은 총 443건, 동맥류파열로 인한 개두술이나 천두술 등 뇌혈관외 수술은 총 109건 진행됐다.
신경외과 의사는 6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4명이 이번에 사망한 간호사에게 필요했던 개두술인 뇌동맥류결찰술을 집도할 수 있다.
명지성모병원은 이처럼 응급상황에 대비해 충분한 장비와 인력,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음에도 전문병원으로서 역할이나 존재에 대해 일반인 뿐 아니라 의료진 역시 인식이 저조한 것이 현실이다.
허준 의무원장은 “심장, 암, 뇌졸중 등 모든 분야에서 서울과 대학병원이 최고라는 인식이 국민들 마음 속에 굳어졌다”며 “특히 최근 몇 년간 비급여의 급여 전환 정책 등이 대형병원에 대한 문턱을 낮춰 환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뇌혈관질환전문병원임을 알리기 위해 버스나 건물옥상, SNS 등을 통해 광고를 진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허준 의무원장은 “병원 자체적인 홍보활동은 한계가 분명하다”며 “이번에 사망한 간호사도 전원을 위해 여러 곳에 연락을 했다고 알고 있다. 대학병원의 정확한 이송체계는 모르지만 뇌혈관질환전문병원 존재를 알고 있었을 텐데 연락이 없어서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뇌혈관질환 응급환자는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데 소방서 구급대원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전문병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상급병원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에서 지정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전문병원인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 지지와 홍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학병원 ‘제자 육성’-전문병원 ‘치료‧수술’ 수행 등 역할 분담 필요”
허준 의무원장은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학병원과 전문병원 역할을 분명히 나눠 서로의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은 제자 육성과 연구에 집중하고 전문병원은 환자 치료와 수술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허 원장은 “대학병원은 수술을 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발표를 통해 학계에 기여를 해야 한다”면서 “해야 할 일도 많고 책임감도 큰 곳인데 치료와 수술, 연구, 제자 육성 등 모든 것을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 가장 중요한 일은 제자 육성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중소병원이 숙련된 의료진을 키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를 육성해 곳곳에 있는 뇌혈관질환전문병원 등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면 전문병원은 반복적으로 치료 및 수술 경험을 쌓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현재 뇌혈관질환전문병원이 포항과 청주, 대구, 서울 등 전국 4곳에 있는데 이를 중심으로 지역별 의료체계를 정립한다면 더욱 촘촘한 뇌혈관질환 치료시스템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난이도 의료행위 수가 현실화 시급 등 저수가체계 전면 개선돼야”
또한 허준 의무원장은 의료계에서 이번 사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는 '중증질환 분야의 저수가 체계' 역시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머리를 연다는 것 자체가 정상혈관을 잘 못 건드리면 평생 장애가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하다”며 “신경외과 안에도 다양한 세부파트가 있는데 이런 이유 등으로 뇌혈관 전공자는 30%도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경외과 뇌수술 같은 기피과는 인력수급을 위해 분명한 장점이 있어야 한다”며 “의료진 희생을 인정해주고 그에 대한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현재 의료수가는 터무니없이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허 원장은 중증질환 고난이도 의료행위에 걸맞은 진료수가 현실화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허준 의무원장은 “중소병원이기 때문에 운영을 위해 상업적인 면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 명의 환자를 살리기 위해 뇌수술을 시작하면 5~10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는 외래환자 수십명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행 의료구조는 환자를 닥치는 대로 보면서 그중 수술이 필요한 한 명을 골라내는 방식인데 이는 막노동과 다를 바 없다. 수가가 높으면 정말 필요한 환자만 볼 수 있어 과잉검사와 진료가 줄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 오히려 환자를 놓치지 않고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