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전체 헌혈 건수가 줄었지만 지정헌혈 비중이 높아졌다. 위급한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의료계 및 환자단체에 따르면 백혈병·혈액암 환자들은 진단을 받으면 무균실에 입원, 수차례 항암치료를 받은 후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다.
해당 치료를 받으면 적혈구·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심각한 빈혈이나 장기출혈로 이어진다. 이때 긴급히 적혈구·혈소판 수혈을 받지 못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진다.
여름 방학·휴가, 한겨울 방학·혹한기, 설날·추석 등 연휴가 장기간 지속되는 시기에는 매년 혈액 부족 상황이 반복된다.
의료기관에선 환자나 환자가족에게 헌혈자를 구해오길 주문한다. 환자는 ‘지정헌혈제도’를 활용해 헌혈자를 직접 구해 헌혈의집·헌혈카페에 가서 헌혈하도록 하고, 이 혈액을 환자가 치료받는 병원으로 이송 받아 환자가 수혈을 받게 된다.
문제는 지난 2016년부터 환자와 환자가족이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지정헌혈 사례가 계속 증가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한해 동안 14만2355개 혈액을 환자와 환자가족이 직접 구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총 헌혈건수 260만4427건 중에서 5.4%에 해당하는 14만2355건이 혈액 부족으로 환자나 환자가족이 헌혈자를 직접 구해 마련한 것이다.
백혈병환우회 관계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 헌혈해줄 사람을 구하는 환자들의 안타깝고 다급한 사연들을 자주 볼 수 있다”면서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제 의료진이 알려준 기한 안에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못한 환자가족은 병원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의료진은 지정헌혈자 여유가 있는 다른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혈액을 빌려서 위급한 환자에게 우선 수혈하기도 한다.
앞서 정부는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는 각 병원들과 함께 ‘병원은 혈소판 혈액 신청을 당일에 하지 않고 사전에 예약토록 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전국 혈액원을 네트워크화 해서 사전 예약한 혈소판을 공급하는 시스템’(혈소판 사전예약제)'을 구축했다. 국민들도 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혈소판 헌혈에 참여했다.
이는 한국백혈병환우회가 지난 2006년 8월 “백혈병 환자가 직접 피를 구하는 잘못된 수혈 관행을 ‘혈소판 사전예약제’ 도입을 통해 해결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에 호소한 덕분이다.
이를 통해 2007년부터는 혈액이 특히 부족한 하절기 방학·휴가 때나 동절기 방학·혹한기나 설날·추석 등 연휴가 장기간 지속되는 시기를 제외하고는 각 병원에서 환자나 가족에게 혈소판을 직접 구해오도록 요구했던 관행은 사라지게 됐다.
이같이 지정헌혈 관행은 16년 전 ‘혈소판 사전예약제’ 실시를 통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2016년부터 지정헌혈이 매년 증가, 환자가 치료제인 혈액을 직접 구해 치료받는 상황이 됐다.
14만2355명의 환자와 환자가족이 헌혈자를 직접 구하지 않고 투병과 간병에만 전념하려면 한 해 14만2355명이 추가 헌혈해야 한다.
수혈자단체인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올해 6월 14일부터 “생명나눔 헌혈자 14만2355명 필요합니다. 당신도 1명의 생명나눔 헌혈자가 돼 주세요”라는 슬로건으로 ‘142355 이혈전심(以血傳心) 헌혈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환우회 관계자는 “투병과 간병에 전념해야 할 환자와 환자 가족이 군부대는 물론 경찰서, 대학교, 길거리 등으로 뛰어다니며 직접 헌혈자를 구하는 이중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