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上] 응급상황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전원돼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생(生)을 마감한 젊은 간호사 뉴스가 한 달이 지나가도록 계속 회자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반평생을 보낸 필자이지만 의료 여건 전반을 잘 몰라
의견을 내기도 불편했다.
과거 프랑스에 2년동안 신경중재의학 분야 연수를 갔던 프랑스 병원에서 지주막하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이하 SAH) 환자들을 보면서 겪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났지만 부족한 의견을 내게 되면 자칫 한 쪽으로 치우칠
것을 염려한 것도 사실이다.
처음 소식을
듣고 나서 한 달이 넘어간 이 시점까지 놀람, 분노, 안타까움
등의 다양한 느낌과 함께 냉정한 현실, 어려운 문제인식, 인간과
의학의 한계, 각종 보건정책 및 제기된
개선안을 보면서 한 분야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다고 자부하는 필자의 마음 속에서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어지럽게 교차했고 한동안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혹시 이 문제를 마주하는데 있어 환자, 병원은 물론 의료정책을 제시하는 정부 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무거운 마음을 전제로 대한민국 의사로서 얼마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생각을 좀 정리하고자 한다.
그 동안 매스컴에서는 환자 전원 이유, 개두술 의사 부족, 골든타임을 놓친 응급의료전달체계 개선, 수술할 수록 적자 초래하는 수가체계, 의사 불신 극복, 필수의료 중요성(대도시 중증수술의료센터 및 필수전문의 확보), 전문의제도 함정(필수전문의 지원 부족) 등에 대해 많은 보도를 했다.
한 간호사의 죽음은 우여곡절 끝에 알려졌지만 그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심정이다.
성의정심은 그 과정에서 ‘사람 (Human)은 어디에 있었는가?’ 를 되묻는 것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되새겨본 대학(大學)의 한구절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환자와 의료진이 모두 사람들인 만큼 이런 질문은 계속 돼야 하는 영원한 숙제다.
감소 추세 뇌졸중 환자 사망률과 지주막하출혈 발생 빈도
SAH를 언급하기 전에 우선 뇌졸중 환자의 국내 추세와 빈도를 살펴보겠다. 이 자료를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국내 뇌졸중 사망률은 계속 감소 추세다. 한
때 사망률 1, 2위를 다투었지만 2020년에는
암, 심장질환, 폐렴에 이어 4위로 내려 앉았다(그림 1). 모든 질병의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지만 유독 뇌졸중 감소 추세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관련 분야 많은 의료진들 노력이 컸다고 본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전문의로서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게 하는 통계자료다. 아무튼 뇌졸중 환자의 사망률 감소가 지속되는 현상은 현재로써는 매우 고무적이고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선 전제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사망원인
순위 추이(통계청 보도자료 2021)
뇌졸중은 크게 뇌경색과 뇌출혈과 나누는데 약 70%가
뇌경색이며 나머지 30%가 뇌출혈이다.(이하 수치는
이해를 돕기 위한 개략적 자료임을 미리 밝힌다)
현재 뇌출혈은 감소 추세에 있다. 뇌출혈 원인은 대부분
고혈압이다. 지주막하출혈(SAH)은 전체 뇌출혈의 약 10% 정도밖에
안된다. 주원인은 뇌동맥류 파열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에 해당하는 SAH는 아주 드문 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뇌출혈의 흔한 원인도
아니다.
뇌출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혈압성 뇌출혈은 주로 뇌실질부 속에서 일어나지만 뇌조직이 어느 정도 완충작용을 하고 있으므로 다양한 경과를 보인다. 갑작스럽게 출혈이 뇌속으로 파급돼 급격한 뇌압상승을 일으키는 경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방어기전은 있는 것이다.
반면 SAH는 물(뇌척수액)이 순환하는 지주막하 공간에서 뇌혈관 파열로 출혈이 발생하므로
뇌압 상승이 급격히 일어나 갑작스러운 의식 소실과 순환기계 장애를 수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은 매우 급작스러우며 심한 두통, 구토, 의식소실, 발작 등의 분명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적은 빈도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심각한 상태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SAH는 다른 질병과 좀 다른 대처를 해야 한다.
이러한 SAH는 과연 얼마나 발생하는 것일까? 이는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추정 변수는 많지만 필자가 대략적인 계산을 해 보면 인구 10만명당 년간 10명 정도가 발생한다. 국내 인구를 5000만명으로 봤을 때 1년에 약 5000명 정도 발생하는 것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인구를 1,500만명으로
보면 약 1500명 추정된다. 이를 토대로 수도권에서는 매월 평균적으로 약 120명 정도 발생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도 이러한 인구수 비례로 추정계산은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핀란드, 일본 등과 함께 뇌동맥류와 지주막하출혈이
좀 더 많은 인종에 속하므로 이 계산치보다는 약간 높게 잡을 수도 있다. 아울러 최근 들어
건강진단을 통한 MRA(자기공명혈관조영) 검사에서
많은 비파열 뇌동맥류가 발견돼 치료되므로 SAH가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앞에서 나열한 자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SAH 환자 발생 빈도는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뇌졸중 원인 중 하나인 SAH는
환자가 건강한 상태로 잘 지내다가 갑자기 생사기로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이 질환에 관해서는 '특별한
분리 대응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의료 전반의 구조를 뒤흔들 수 있는 조치로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를 잘 숙고해야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년간 5000명 정도의 응급환자를 골든타임 내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SAH 환자 응급체계 개선 필요 –일례로 '당직 병원' 지정 검토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뇌졸중 환자에서 SAH 환자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된다고 본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뇌혈관개두술 전문의를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까? 개두술 전문의를 육성해서 그 어려운 응급수술을 할 수 있도록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는 하는가 이다.
애당초 2명으로 1년 365일동안 응급환자를 담당하긴 어렵다(최근 사건 발생한 서울아산병원 사례). 그런데 365일간 그런 응급상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확인해 본 적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2019년 기준으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이 13개인 점을 감안하면 위에서 계산한 수도권 환자가 월 120명 남짓이다. 수치상 서울아산병원으로 오는 환자는 월평균 10명 정도다. 이 중 일과시간이 아닌 야간이나 주말에 오는 사례가 필자 경험으로는 한 달에 1~2건 된다. 그런 환자를 위해 24시간 365일 뇌혈관 개두술 전문의사를 대기시킨다?
이는 전문의사를
아무리 늘인다고 해도 애시당초 불가능한 현실이다. 전문가는 제한돼 있고 환자는 위중하지만 그런 환자는 한 달에 몇 십 건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환자를 위해 모든 병원이 전문가를 키워 24시간
커버한다?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례를 들어 보겠다.
프랑스에서는 당직 병원을 운용한다. 요일 별로 당직
병원이 있다. 각 병원은 신경중재와 뇌혈관수술 분야에서 잘 알려진 병원들이다. 공공의료가 발달된 프랑스는 119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그날 당직병원으로의 이송에 대비하고 임무를 수행한다. 당직요일이 되면 대개 8시까지 교수 중심의 신경중재팀이 대기하고 그 이후에는 콜을 받아 골든타임에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정부가 당직병원 신청 및 지정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리 등 수도권에는 7개정도 지정병원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각 병원에 2~3명의 담당 전문의가 있다. 단, 2명이라고 하더라도 의사 당직은 2주에 하루이므로
견딜 만하고 본인 당직 날에 철저한 대비를 할 수도 있다.
물론 환자가 특정 병원을 원하고 그 병원에서 받아 줄 수 있으면 그 병원으로 갈 수도 있다. 서울 같은 경우는 넓고 인구가 더 많으므로 가까운 지역을 구역별로 나누고 광역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도별로 나눠 당직병원을 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당직병원 운용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공의료정책이 아니다. 병원끼리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SAH라고 하는 사회적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 특정질환에 대해 과연 누가 나서서 이러한 업무를 떠 맡을 수 있을까? 절대로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필자는 비세트르에 위치한 파리의 한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했는데 당직병원으로 지정돼 있었다. 피에르 라자니아스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중재 교수가 있었고 다른 2명의 스태프가 더 있었다.
SAH 환자가 오면 신경중재팀이 대개의
환자를 치료하며 실제 응급수술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따라서 뇌혈관수술팀이 야간이나 주말에
수술을 하는 경우는 거의 못봤다.
다만 뇌압 상승이 심한 경우에는 뇌실외배액(Extraventricular
drainage, EVD)을 시행하는데 그 것도 대개는 시술 이후 실시한다. 3명의 전문의가
일주일에 하루 당직을 서므로 전문의 한명 당 월 1~2회 서게 되는 것이다.
파리 근교 비세트르병원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해도 직원들이 모두 일년에 여름, 겨울에 각각 한 달씩 휴가를 가는데, 그럼에도 병원이 잘 돌아가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차분하게 돌아가는 병원에서 우리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년간 건수를 소화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당직병원제도를 통해 진료업무 안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이번 서울아산병원 사건이 발생한 후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제도를 보면서 들은 생각이 있다. 전문의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365일
대기하면서 정부로부터 휴가 행정지도까지 받는다는 것이 답(答)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오히려 역으로 휴가를
가서 휴식을 취하고 학회도 참석해 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면 전문의 지원도 늘 수 있지 않을까?
뇌혈관
외과의사는 의사라면 정말 누구나 선망하는 멋지고 보람있는 전문의 아닌가? 아울러 이 골치
아픈 SAH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면 뇌졸중 전반에
관한 필수의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해결책도 좀더 차분히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