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下]프랑스에서 전공의는 수련기간 중 6개월씩 로테이션을 했다. 다른 진료과 업무도 배우고 과간 협조를 도모할 수 있으며 본인이 전문의를 마치기 전에 그 과를 경험함으로써 장차 전공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전국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다.
프랑스, 전공의 수련기간 동안 6개월씩 타과 로테이션
이런 로테이션 제도는 전공 분야에서는 얻을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의 수련도 받음으로써 교육적인 차원에서 좀 더 폭넓은 다양한 전문의를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엄청난 발전과 세분화된 현행 의학 분야에서 과간 협조를
도모하고 경계를 허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로테이션이 가능한 것은 의사들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정부와 공공의료가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영역 간 벽(壁)이 높아지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전공의 로테이션은 전문성을
높이면서도 전문영역의 벽(壁)도 허물 수 있는 좋은 정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보면서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공공의료 교육의 힘이 바로 이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헌데 이런 제도가 말은 쉽지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병원에서 월급을 주는 전공의가 다른 병원으로 간다면 당장 난리가 나지 않을까? 의사를 키운다는 관점(공공의료)과 의사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는 관점(진료인력)이 배치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비하면 근래 전공의 처우 개선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주간 진료근무시간 제한을 비롯해 교육일정 참여, 술기 훈련 및 수련 강화뿐만 아니라 급여도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공의들을 위해서는 잘 된 일이지만
결국 규제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루어진 전공의들에 대한 배려는 병원의 인력난을 가속화시켰고 진료 부담은 병원 전문의들 몫으로 부메랑되기도 했다.
뇌졸중, 골든타임 중요하며 의사 외 다른 의료진 교육도 철저히 준비 필요
전술한 바와 같이 지주막하출혈(SAH)에 대한 개념 정리가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안돼 있다. 여기에 SAH에 국한된 대응 프로토콜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일단 뇌졸중 전반에 관해 언급을 하고자 한다.
뇌졸중 골든타임은 보통 6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이 남았다고 천천히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빨리
대처할수록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필자는 의식 소실과 마비로 들어왔다가 시술 후 뇌혈관 조영실 테이블 위에서 바로 회복해 벌떡 일어나 집에 가겠다고 우기는 환자들도 봤다. 이는 현대의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제 때
적용되면 얼마나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응급시술은 의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응급전달체계도 중요하지만 뇌졸중 응급진료를 담당하는 간호사와 방사선사 전문성 강화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환자가 제
때 병원에 온다고 해서 치료 등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전에 시술을 위한 많은
장비 및 약품을 관리하고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기기 및 장비 관리와 3차원 영상분석을 시도할 준비도 필요하다. 이들을
사전에 철저히 교육 및 훈련시키는 것은 국내 의료 여건상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이들 의료진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신경중재팀으로만 구성된 3교대 당직체계를 만들었다. 그 전에는 직원들이 다른 파트 당직을 같이 서야 해서 익숙치 않은 직원이 당직을 설 경우 준비시간이 길어지고 매번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하는 등 모두가 힘들었었다.
이후 전공의 주간근무시간 제한, 휴가와
교육 등으로 소위 퐁당퐁당 당직 대기도 발생,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울면서 호소하는 직원들이 있어 4교대로
확대했다.
아울러 필요한 재료와 디바이스를 한 개 카트에 실어 두었다가 해당 응급환자가 오면 그 카트를 방안으로 들여와서
바로 시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응급상황에서는 자주 쓰면 물품 관리와 사용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신입직원이 있으면 그 카트를 가지고 교육을 시키기도 좋다. 작은 노력이지만 응급 환자를 빠른 시간 내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모든 프로세스를 표준화함과 동시에 변하는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원내 응급시술 진료체계를 갖추는 것이 모든 병원서 다 가능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뇌졸중 응급시술이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의사 수 결정이 중요하다고만 생각하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견해를 제기하는 것이다.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게 아니라 난이도 높고 힘든 뇌수술을 할려는 의사가 적은 실정
한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거나, 각
병원에 뇌혈관수술 의사를 늘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응급의료에 대한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는 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다. 인구 10만명당 OECD 평균이 1.3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4.7명으로 인구대비 무척 많은 나라다.
문제는 어려운 뇌혈관 수술을 배우려는 전문의가 적다는 것이다. 능력있는 의사가 난이도 높고 힘든 분야를 전공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와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게 원인일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필자가 의견을 내기도
힘든 부분이다.
필수진료 과목의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는 매년 반복되고 있고, 그마저도 전문의 취득 후 타과로 진료과를 변경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문제의 핵심은 전체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 필수분야, 필수과 전문의 부족이라며 의사 수 증원이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지속적으로 항변하고 있다.
행위별수가제로 인해 간결하게 좋은 결과 내면 손해, 합병증 생기면 수익 나는 아이러니
우리나라 의료 수가가 낮다는 것은 많은 분야에서 제기되는 문제다. 우리나라
진료비 단가는 미국 48%, OECD 평균대비 66%이며
뇌혈관 수술은 일본의 약 20% 정도 수준이다. 뇌혈관 질환들에
대해 시행되는 신경중재시술 수가 역시 서구나 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다.
경과가 좋고 회복도 빨라서 입원기간이 짧으면 수가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거기다가 삭감도 자주 발생해서 그 손해는 고스란히 병원이 모두 지고 간다.
우리나라 수가는 대개의 경우 행위별수가제이므로 검사나 수술, 즉
진료행위를 해야만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극단적인 표현을 쓰면 간단히 잘 치료해서 좋은 효과를
내면 손해를 보는 구조이며 오히려 합병증이 발생해서 많은 조치를 하게 되면 수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구조다. 안타까운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뇌동맥류에 대해 포괄수가제와 같은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보았다. 내과계와 외과계는 각각 입원 하루당 얼마씩 할당이 주어져 있었다. 따라서
입원기간에 대해서는 규제가 적용이 되는지 불필요하게 입원이 지연되지 않도록 입원기간에 매우 민감했다.
무슨 재료로 어떤 치료를 하는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필자가 있던 병원 의사들은 고가 신제품을 쓰고
있었으므로 병원으로부터 재정적 압박을 많이 받고 있다고 자주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
같은 질병(출혈)에
대해 시술과 수술 두 가지 치료법이 있다고 치자. 한 가지는 혈관을 통해 들어가서 색전물질을
투여, 지혈을 하는 것이다. 시술 시간도 짧고 결과가
좋으며 회복이 빨라서 수가도 낮을 수 있다. 이는 조치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수술로 결찰을 하는 것인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 따라서 어렵고 힘든 진료를 한 것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그렇다. 더 위험한 진료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수가를 받는다.
만일 똑 같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여기에 질병의 치료 난이도가 높고 심각한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좀 더 단순해질 수 있다.
하지만 치료 결과나 성과를 분석하는 것이 마치 잘잘못을 가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의 따뜻한 감싸기
문화 정서상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는 각 병원별, 질병별로 사망률과 같은 성과지표 (outcome
index)를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일까?
신경중재의학도 뇌출혈 등 중증 뇌질환 치료에 '중요 역할' 수행 가능
얼마 전 세계학회에서 신경중재 치료를 준비와 시술로 나누면 95%가
준비이고 5%가 시술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신경중재의학 분야는 준비하는데 있어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많이 든다.
그 이유는 수술처럼 인체 특정부분을 열고 들어가 병변을 직접 보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투시(실시간 움직임을 볼 수 있는 X-선 기기)와 혈관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해 접근하고 병변을 치료하는 혈관을 통한 간접적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술재료에 대한 물성과 특성을 파악한 후 가장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고 영상자료들을 통한 복잡한 3차원적 뇌혈관 해부학에 적용시켜 병변에 도달하고 치료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래서 ‘격물치지’라는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신경중재의학 특성으로 필자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 정부가 이번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중요성을 재인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향후 뇌개두술 등 어렵고 힘든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들에 대해 좀 더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
또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경중재 전문의들이 24시간 뇌졸중 당직을 서면서 숨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한다. 묵묵히 자신들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진료 업무를 수행하는 신경중재 전문의들이 국민들
뇌수술의 중요한 첨병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가 좀 더 인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