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징계권은 의료계의 숙원 중 하나다. 자율징계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달리 의료인 단체들은 자율징계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면허 신고를 대행할 뿐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는 법으로만 규제하기 어려운 다양한 경우가 다수 있는데, 의료행위는 그 특수성을 잘 아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 특히 의료행위에 대한 적정·적법성 판단은 의료현장을 잘 이해하는 의료전문가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의료인 단체들에 자율징계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인 단체들이 자율징계권을 공정하고 적정하게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협회가 바로 자율징계권을 행사하기보다는 중간단계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도덕적 진료 선제 대응하고 의료 현장에 대한 국민 신뢰도 제고 필요
해당 분야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직업윤리 위반 행위나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을 각 협회가 징계한다면 위법하진 않지만, 국민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현장에 대해 비전문가로 구성된 행정·사법 당국이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위원 등을 초빙해 전문성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전문위원은 기본적으로 친행정청 성향으로 구성되는 점, 소수의 전문위원이 모든 의료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돼왔다.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판단이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 불법까진 아니어도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사법 당국이 전혀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
이 상황에서 의료현장을 잘 이해하는 의료전문가들의 단체가 자율징계권을 가지게 된다면 불법 의료행위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의료인 협회가 자율징계권을 가지고 스스로 직업윤리를 위반하는 회원을 징계하면 의료현장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회원들이 불법·비도덕적 진료를 하는 경우 과거보다 더 쉽게 적발될 뿐 아니라 과거와 달리 현실적 제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적정한 진료를 할 유인이 더욱 강해져 의료현장이 적법·도덕적으로 운영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중들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 제보할 곳이 있다는 사실과 의료인들이 그 단체를 통해 제재를 받는 것을 확인하면 의료인과 의료행위에 대한 전반적 신뢰를 제고할 수 있다.
회원 반발·정치적 활용 위험·내부 갈등 표출 예상
현실적으로 의료인 협회에 가입하지 않는 회원이 다수 있어, 자율징계권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 징계가 선행돼야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원들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더구나 현재 의료인 단체 내에 있는 윤리위원회가 협회 내부 정치에 활용돼 ‘정적 제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는 자율징계권을 가진 변호사협회에서도 나오는 비판으로, 변호사협회는 플랫폼 ‘로톡’과 관련해 회원을 징계해 내홍이 일고 있기도 하다.
협회가 자율징계권을 갖는 순간부터 공정성 시비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 자명하다. 또 그간 협회 내 갈등이 정치적·개인적 갈등이었다면 자율징계권 도입 후 갈등은 법정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높다.
위법 행위에 대한 징계의 경우, 의료인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에서 법리적 판단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전문위원으로 법조인을 둔다고 해도 전문위원이 친위원회 성향이 아니냐는 비판 등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변호사협회조차 징계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수많은 송사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인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가 실질적으로 회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게 된다면 손해를 입은 회원이 순순히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 협회가 송사에 수없이 휩싸이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자율징계권 도입, 단계적 접근해야 부작용 줄일 수 있을 것
자극적 기사와 일부 극소수 부도덕한 의료진 행위로 인해 대중들이 의료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인들이 대중 인식을 바탕으로 과도한 법적 제재에 나서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의료행위 뿐 아니라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해 규제해 의료인 신뢰를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대한 판단은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판단하기보다는 의료현장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의료인만이 할 수 있다.
현실적인 장애물도 적지 않다. 이에 각 협회가 자율징계권을 가지는 방향성은 확고히 하되 자율징계권의 즉각 도입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제안한다.
1.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보건복지부 징계절차를 현실화·정례화하고 보다 많은 의료인 참여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의료단체·의료인의 징계절차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고, 지금과 달리 실효성 있는 징계가 이뤄질 것이다.
2. 1을 통해 의료단체·의료인들이 징계절차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의·치·한의계가 공동으로 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변호사협회 등 법조단체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정적제거용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고, 의료소송·의료관련 소송에 경험이 있는 법조인들의 참여를 통해 보다 정밀한 논리로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3. 2를 통해 통합의료단체와 변호사협회 등이 무리 없이 징계권을 행사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그간 쌓은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각 협회가 자율징계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를 통해 가장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판단과 징계가 진통 없이 이뤄질 것으로 판단된다.
자율징계권 도입은 필수적이지만 즉각적으로 자율징계권을 도입하는 데는 많은 걸림돌이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간과하고 무리하게 도입을 추진하다가 오히려 실효성 있는 자율징계권 활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기존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의·치·한이 연합해 경험을 축적하고 신뢰 확보를 이룬 뒤 각 협회가 자율징계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