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제 산소통을 근처에 두고 MRI 기기를 가동시키면 강력한 자장이 걸려 산소통이 흉기로 돌변, 환자의 머리를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주는 직역이 의학물리사인데, 국내 의료기관에는 이들을 의무로 배치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한핵의학회 박정미 수련교육이사(순천향대부천병원 핵의학과 교수), 김진수 핵과학물리이사는 최근 데일리메디와의 인터뷰에서 “대형병원에 박사급 의학물리사를 1명 이상 채용하고, 특수 의료장비 질관리 인증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학물리사는 의사에게 영상과 치료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CT 및 MRI, 초음파 PET/CT, 방사선 등 의료 영상장비·촬영 프로토콜 관리 및 방사선량 계산·질(質) 관리 등을 수행한다.
현재 국내 방사선종양학과 치료방사선 분야에서는 의학물리사를 채용해 인증 심사 및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방사선안전관리 심사를 맡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진단과 중재시술(인터벤션) 영역에서는 의학물리사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 이에 선량관리 등을 의사, 방사선사, 병원 의공학과가 별도로 나눠서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단 영역 고도화···전자공학·원자핵공학 지식 보유 의학물리사 수요 상승"
"국내 의료기관 의무 배치"
박 이사는 핵의학과 전문의지만 “진료를 보는 의사가 전자기, 방사선 등 특수장비 관리와 영향을 모두 전문적으로 알 수는 없다”며 “자주 쓰는 장비 특징은 외워서 알더라도 사고가 났을 때 등의 기전은 이해가 어렵다”고 실상을 전했다.
더구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 등 영상 기반 진단 영역이 차츰 고도화되면서 의학물리사 역할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김진수 핵과학물리이사는 “진단에서 치료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어느 정도 방사선이 피폭되는지 등에 대한 선량평가가 요구된다”며 “전자공학, 원자핵공학 등의 전문 지식이 있는 박사급 의학물리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해당 직역에 대한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일부 직역 간 갈등과 공감대 형성 실패로 수 년 째 답보된 상태다.
김진수 이사에 따르면 실제 핵의학 분야 의학물리사는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동아대병원 등에 단 3명일 정도로 활동 인력이 매우 적다. 나머지 전공자들은 연구소, 학교 등에 재직하고 있다.
의료기관 고용이 의무화되지 않아 종사자 수가 적고, 이에 제도권 안으로 편입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김 이사는 “통계청은 직업군에 사람이 너무 적어서 직업군으로 잡을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해왔다”고 지적했다.
"국내 특수 의료장비 관리, 인력 아닌 검사 통제만 초점 문제"
또 그간 정부 차원의 특수 의료장비 관리 초점이 운영관리가 아닌, 단순 검사 수 통제에 맞춰 있어 해당 분야 발전이 불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미 이사는 “PET/CT 검사 등을 보험수가로 진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등 고가 장비 컨트롤에만 집중해왔다”며 “그동안 운영관리 향상을 위한 인력적 측면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 중 미국은 지난 2009년부터 CT, MRI, PET/CT, 인터벤션 분야에서 보험수가를 받기 위해서는 한 기관에 반드시 의학물리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뇌(腦) CT 촬영환자가 선량 과다로 탈모가 생기는 등 부작용이 미국 전역에서 다수 포착, 환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국내서도 10여 년 전 심장혈관 인터벤션 시술 때 의사가 방사선 빔을 계속 나오도록 누르고 있어 환자가 화상을 입은 사례도 있었고, 근래는 산소통이 MRI 기기 안으로 빨려들어가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박정미 이사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회의 때마다 의학물리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늦었더라도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특수의료장비 관련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선진국에 걸맞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인식 제고에 힘쓸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지난 2012년 특수의료장비 운영에 대한 규칙 제정 시 의학물리학회가 의학물리사 도입을 건의한 바 있지만 방사선사협회측 반대로 무산된 뒤 아직 관련 논의가 멈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