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해 온 서남의대 부속병원(옛 광주적십자병원)이 ‘도심 속 흉물’이라는 오명을 탈피, 대중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을 예고했다.
무려 60년이 넘는 유구한 세월 속에 △공공병원 △민주화 운동 사적지 △대학병원 △폐업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 온 만큼 앞으로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
1955년 설립돼 공공의료를 수행해오던 광주적십자병원은 1980년 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광주시민을 치료했던 곳으로, 5.18 사적지 제11호로 지정돼 있다.
당시 긴급 수혈이 필요한 환자가 즐비하다는 소식에 일반 시민들이 대거 헌혈에 참여하는 등 광주시민의 단결력과 민주화 항쟁의 아픔을 함께 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적십자병원들과 마찬가지로 경영난에 고전하면서 1995년 학교법인 서남학원에 매각돼 서남의대 부속병원으로 탈바꿈했다.
서남학원은 1994년 의과대학 인가를 받았고, 광주적십자병원을 비롯해 남광병원 등을 잇따라 인수하며 의과대학 육성에 남다른 의욕을 쏟았다.
민주화운동 사적지가 대학병원으로 거듭나면서 광주시민들의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화려한 부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남학원이 사학비리에 휩싸이면서 의과대학 폐과 결정이 내려졌고, 부속병원 역시 2014년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10년 가까이 도심 속 흉물로 방치돼 왔다.
재단 측은 구조조정을 위해 자산 매각을 결정했다. 민주화운동의 사적지인 옛 광주적십자병원 역시 사학비리 악재에 매물로 나왔다.
광주시민들은 동요했다. 5.18 역사와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옛 적십자병원이 또 다시 사유화될 경우 보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사적지 훼손을 우려하는 여론이 확대되면서 광주광역시가 지난 2021년 7월 88억5000만원에 매입했다.
이후로도 순탄치는 않았다. 오랜 세월 만큼이나 시설이 노후되면서 안전진단 결과 ‘철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와 5‧18기념사업위원회 등은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상징성 등을 감안해 최소한의 보수공사를 거쳐 원형대로 유지키로 했다.
이후 5‧18기념재단 주도로 옛 광주적십자병원 활용방안 연구가 진행됐고, 14일 최종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광주전남연구원은 적십자병원을 대중친화적이고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문화적 공간이자 체험공간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5‧18역사 보존 거점공간 △실감콘텐츠 전시공간 및 갤러리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 △5‧18 연계작가 공방 및 창작소 △여행객 교류 및 쉼공간 등이다.
역사보존과 전시를 위해 응급실, 1층 로비를 생생하게 복원하고, 3D입체전시와 미디어 파사드 등을 활용해 디지털 라키비움(도서관+박물관+기록관)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지상 3층 헌혈실과 옛 보존실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해 기존 기아보호소 건물을 새로운 헌혈실로 구축, 시민들의 헌혈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방문객 쉼 공간은 여행자센터와 게스트하우스, 기념품숍 카페 등으로 구성한다. 쉼 공간에는 창작물 및 여행사진 기획전도 연다.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은 청년 창작공방과 아트 뮤지엄, 회의실 등으로 꾸민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오월주먹밥 만들기’, ‘오월의 향수 만들기’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