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3년간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는 이제 엔데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유독 올해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도 다양한 이슈가 발생했다. 정치로 보면 정권이 교체됐으며, 사회적으로는 양극화가 심화됐다. 경제적으로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드는 악재의 연속이다.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서 올해는 향후 의약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만한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며, 그 여진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데일리메디가 2022년을 강타했던 보건의약계 현안 10가지를 꼽아봤다.
1. 부실한 안전 대책에 질식당한 이태원 참사
158명이 압사 사망한 이태원 할로윈 참사 사건이 국민들에게 크나 큰 상처를 안겼다. 안전대책 부실로 사상자가 대거 발생한 이 사건은 진상 규명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태원 참사 대응 책임을 묻기 위해 야당이 주도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책임론도 유족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인 재난응급의료 시스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재난의료지원팀(DMAT) 의료진이 제출한 활동보고서에 따르면 재난의료 컨트롤타워 부재 및 통신 장애, 현장 통제력 부족을 드러낸 보건소장에 집중된 응급의료소장 권한, 경찰·의료·소방 소통을 위한 통신체계 미흡 등이 문제로 지목, 개편이 요구됐다.
2. 필수의료 ‘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 참담
필수의료 과목인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올해도 전공의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외과 경쟁률은 0.65대 1로 마감했다. 산부인과는 저출산과 코로나19 장기화 등의 악영향으로 정원 181명을 모집했지만 134명의 전공의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대부분의 수련병원에서 필수의료 과목의 충원에 실패했다.
소아청소년과의 지원율은 이보다 더 참담한 수준이다. 2023년 전반기 전공의 모집 수련병원 62곳을 분석한 결과 소아청소년과는 총청원 191명에 33명이 지원해 경쟁률 0.17대 1을 기록했다.빅5 병원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에 성공한 곳은 서울아산병원 1곳에 불과했다. 세브란스병원은 11명을 모집했지만,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수년간 누적된 전공의 및 전문의 부족이 결국 인프라 와해로 이어질 위기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의료취약지가 늘어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청과 세부전문의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방이나 소규모 의료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소청과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 진료를 중단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마저 24시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길병원에서 한시적으로 입원 진료를 중단키로 결정하는 등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3. 문재인 케어 지우기 정책 구체화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강도 높게 비판한 윤석열 대통령 발언 이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기조로 하는 문재인 케어가 폐지 수순으로 향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12월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로 악화된 건강보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급여 및 자격기준 강화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방지하고, 절감된 재원으로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두텁게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 케어 축소 및 폐지 흐름은 조금씩 구체화됐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일률적인 급여화’로 지목하면서 MRI와 초음파 영역 과잉 진료를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개혁추진단도 건강보험 혁신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보편적 보장성 강화 방침을 전면적으로 수정, ‘제한적 급여화’와 ‘필수의료’ 영역의 ‘두터운 보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사실상 문케어 전면 수정 및 폐지 기조로, 의료행위뿐만 아니라 약제나 치료재료 등도 건보재정 관리 방침에서 강화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4. 의료계 VS 간호계 극한 갈등 ‘간호법’ 촉각
보건의료계 직역 간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부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간호법 관련 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 간 대립도 절정을 치닫고 있다.간협은 지난 11월 21일 국회의사당대로에서 간호법 제정 총궐기 대회를 열었는데, 의협과 대한병원협회 등은 같은 달 27일 같은 장소에서 ‘보건복지의료연대 총궐기 대회’를 개최로 맞불을 놨다. 이후에도 양 단체의 국회 앞 ‘1인 시위’는 일상이 됐다. 이제 국회 결정만 남았다.
지난 12월 9일 열렸던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간호법 본회의 부의 요구가 빗발쳤다.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도 이에 동조했다. 최 의원은 간호법 ‘키맨’으로 꼽힌다. 민주당으로서는 간호법 관련 ‘여야 합의’라는 명분까지 쥘 수 있게 된 셈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5. 봇물 터진 '공공의대법' 의료계 긴장
서남의대 폐교와 이에 따른 정원 활용을 계기로 ‘공공의대法’ 통과 여부가 연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달궜다. 보건복지위는 법안심사소위원회가 공공의대법 안건 회부를 두고 연기를 결정할 만큼 해당 이슈는 여야 간 이견이 큰 상황이다.
현재 보건복지위에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김성주 의원),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이용호 의원),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치에 관한 법(김형동 의원), 공중보건장학을 위한 특례법 개정안(서동용 의원),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 개정안(기동민 의원) 등 5가지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야는 지난 12월 9일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했는데, 여야 이견을 차치하더라도 의협 대표로 참여한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패널 사이에서도 외로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12월 임시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안건으로 상정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서남의대 정원을 어떻게든 활용해보려 동분서주 중인 김성주 민주당 의원도 공공의대법 논의 촉구를 위해 공청회장을 찾았으나 빈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