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새벽 1시에 나가려고 그랬겠냐. 그러니 그 선의(善意)는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정치 원로는 말씀하셨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밤이고 새벽이고, 주말이고 휴일이고, 설날이고 추석이고 응급환자를 보기 위해 밤을 새운다.
그날 깊은 밤 핼러윈 축제로 많은 이들이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도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주말 저녁 밀려드는 응급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긴급한 재난 출동 지령을 받고 재난의료지원팀(DMAT)으로 출동했다.
아비규환 재난 현장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들 도움을 절실히 원할 응급환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DMAT 출동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에 대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4시간여 고강도 참고인 조사.
또 어느 국회의원이 긴급 출동하는 DMAT 차량을 자택 근처로 불러 재난 현장으로 태우고 가게 해서 그 병원 DMAT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사건 참고인 조사를 경찰서에서 받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참사 현장서 헌신한 의사들을 꼭 경찰서 출두, 대면조사를 했어야 했나"
근무 시간도 아니고 당직도 아니었던 토요일 밤과 일요일 새벽이었지만 중앙응급의료상황실로 급히 나와 자기가 맡은 상황실장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썼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긴장한 채 떨며 마치 죄인처럼 국회 국정조사 증인석에 서야 했다.
재난 현장에서 응급환자 진료에만 매진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경찰은 4시간여 대면 조사를 꼭 해야만 했을까? 서면조사로도 충분했을 일이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 응급 환자 진료 중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오는 경찰 전화에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이 일반인은 알 수도 없고 알려 주지도 않는 재난 전용 휴대전화로 전화, 재난 현장으로 출동 시 자신을 태우고 가라고 했을 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재난 현장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관용차도 차관은 자리를 양보해서 탈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던가.
DMAT로서 출동하기도 바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재난 전용 휴대전화로 온 국회의원 전화를 받고 출동 시간이 지체될지도 모를 우회 경로 운행을 할 수 밖에 없었을 때, 향후 이 정도로 큰 문제가 될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긴급한 재난 현장으로 쉴새 없이 DMAT을 15개 팀이나 출동 지령하며, 병상 여유가 없는 각 병원으로부터 억지로 환자를 분류해 이송할 병상을 만들어 그 정보를 현장으로 전달하고, 영안실 정보까지 알아봐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그 와중 국회의원 전화를 받고 그 국회의원 방문을 보며 자신이 그 문제로 인해 전국민이 보는 앞에 서게될 모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전문성과 노고를 기억하고 존중해 주길 간곡히 부탁"
선의로도 그렇게 하면 안됐다. 아무리 경찰 직무가 중해도 재난 현장에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출동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을 그렇게 참고인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재난 현장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목적이었더라도 현장으로 출동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자기 집 근처로 DMAT 차량을 보내라고 해서도 안됐다.
DMAT에 사전 편성된 인원이 아니면 아무리 의사라 하더라도 재난 현장에 스스로 가서 현장 응급의료소장의 허가를 얻어 자원봉사 형태로 임해야 했다.
재난 현장 못지않게 바쁜 중앙응급의료상황실로 임의로 전화를 걸어 재난 대응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급기야는 그 상황실을 방문해서 1분 1초가 급한 상황실 업무에 차질을 줄 수 있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하며, 소방재난본부의 상황실에서 119구급대원들의 직접의료지도를 하고 있다.
또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당직을 수행하고 국민들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디 그들 전문성과 노고를 기억해 주시고 존중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 전문성과 노고를 존중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지고 안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