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잠정 중단했던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연초부터 재개하면서 의료계 반발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약계에서도 정원 문제로 충돌이 시작됐다.
전국 37개 약학대학이 학부제로 전환된 지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혁신신약과' 설치 추진 계획을 밝히자 약사 사회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교육부는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으로 첨단바이오 인력 양성을 위해 약학대학에 혁신신약과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반대 입장문을 내고 "이미 제약공학과, 바이오제약공학과, 제약생명공학과 등 유사학과가 30개 대학, 44개 달한다"며 "이를 간과하고 기존 학과를 지원하는 방안 없이 약대 내 새 학과를 개설하는 것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약사회는 "제약 산업은 기술집약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신약개발을 위해 첨단 신기술분야로 지정해 산업을 육성한다는 방향은 공감한다"고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구현하기 위한 양질의 인력 양성은 도외시하고 약대 입학정원 증원에만 초점이 맞춰진 인재육성 방안은 납득할 수 없다"며 "신약개발 촉진과도 무관하다"고 꼬집었다.
신약개발은 후보물질 탐색부터 비임상시험, 임상시험, 제품화, 시판 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석박사 인력투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4년제 학과를 약대에 설치한다고 해서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근래 대학들이 바이오 분야 학과 신설 등을 포함한 증원 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약사회는 언짢음을 표현했다.
약사회는 "유사 학과를 약대에 유치하려는 일부 대학의 움직임에 대해 약사회와, 약사 사회 전체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필수의료 살리기=의대정원 확대?···의료계 "신중해야"
지난 18년 동안 묶여있던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지난해 말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어 의료계는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020년 의사 총파업 후 체결한 9.4 의정합의를 통해 해당 논의의 재개 시점을 '코로나19 안정화 이후'로 잡았지만, 이제는 그 시기가 도래했다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는 필수의료 의사 인력 부족 문제로 시끄러웠던 가운데,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에 의대 정원 증원을 협조하고 나섰으며 국회에도 현재 공공의대 신설 관련 법안도 12건이나 발의됐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9일 신년 업무계획을 밝히면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뿐 아니라 의대 인력 확충 등 핵심 의료 정책에 대해 신속히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사진]은 지난 10일 복지부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반대입장을 밝혔다.
임 회장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해서 입원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과연 의대 정원을 늘려 해결될 일인지, 아니면 소모가 많은 의사의 처우를 개선해서 해결될 일인지 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이어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소아청소년과 진료 인프라를 망가뜨리고 의료시스템을 뿌리부터 파괴하겠다는 처사 라며 현장을 모르는 황당한 정책"이라고 규탄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12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의정협의 요청이 없었고,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정원 문제가 언론을 통해 이슈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이어 "보건의료제도 및 재원 등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안정화 후 신중한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수급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