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를 비롯해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감염병 위기 끝에 공공의료 분야 숙원이었던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사업이 시작됐지만 당초 계획 대비 반쪽 규모로 출발하는 모습이다.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역사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유행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정부 시절 '감염병예방법' 개정을 통해 국가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신종감염병, 고위험 감염병 등에 대한 전문치료병원을 설립,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 국가 방역체계 개편 방안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후 2017년 2월 보건복지부는 '감염병전문병원 지정 의료기관 등' 고시를 발령하고 국립중앙의료원(NMC)을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조건부 지정했다.
2009년 신종플루 대응,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대응에 이어 2015년에는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했던 NMC를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로 삼겠다는 복안이었다.
코로나19 유행 시작, 본격 속도···NMC 청사진 "본원 연계 150병상 운영"
아이디어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던 중 2020년 1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고, 유례 없이 장기화된 팬데믹으로 중앙감염병병원 설립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더욱 공고해졌다.
2021년 복지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을 통해 2025년까지 중앙감염병병원 등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NMC를 중앙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해 이전 신설하고 전국적으로 7개 권역에 감염병전문병원을 지정, 새로 짓는다는 게 골자였다.
당해년 1월 노후화된 NMC가 신축, 이전할 부지를 확보하고 4월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 측이 중앙감염병병원 설립에 써달라며 7000억원을 기부하면서 사업은 탄력을 받는 듯 했다.
NMC는 새병원을 상급종합병원급 규모로 만들어 필수중증의료 중앙센터로 기능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신축이전 사업에 속도를 내왔다.
2022년 4월 NMC가 밝힌 새병원 모습은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본원 1100병상(모병원 100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이었다.
또 팬데믹 발생 시에는 본원 일부 병동을 축소, 감염병병원 내 감염환자 진료를 위해 인력을 투입하는 식이다.
하지만 부지 변경, 기부금 등으로 사업 규모가 커져 NMC는 지난 2021년 6월 기획재정부와 사업비 조정 논의를 시작했고, 이 같은 계획이 흔들릴 위기에 놓였다.
그간 NMC는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본원 80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1050병상 규모 및 총사업비 적정성 재검토 면제를 요구한 바 있다.
기재부, 총 760병상 확정···"공공의료 폐기" 반발·아쉬운 출발 우려
그러나 올해 1월 기획재정부의 총사업비 조정 최종 결과, NMC 신축·이전 사업 규모는 총 760병상으로 확정됐다. 중앙감염병병원은 134병상으로, 본원은 526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으로 줄었다.
지난 11일 이 같은 소식을 알려지자 NMC측은 입장 표명을 위해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당일 돌연 이를 취소,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야당과 노동계 등에서는 이번 일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성 논리를 앞세워 중앙감염병병원 사업 규모를 축소하면 안 된다는 게 공통된 주장이다.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NMC 신축이전 사업 축소는 공공의료 폐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감소, 과잉병상 등의 단순 경제성 논리에 기반해 총사업비를 조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기부금 약정에서도 150병상 규모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축소하면 약정 위반이다"고 힐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유행 시기 그토록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경제성 논리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공공의료 강화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며 "이번 결정을 폐기하지 않으면 범국민적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번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도 우려감을 피력했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의료원장)은 "NMC가 큰 병원이 돼야 지방의료원 기술 지원 등이 원활할텐데 본원 526병상은 너무 작다"며 "대학병원도 800병상을 기본으로 분원을 짓는데, 공공의료 컨트롤타워가 이 규모로 뭘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지방의료원 인력난 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시점에서 NMC 기능이 강화돼야 지방의료 또한 강해진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조 회장은 "NMC가 강한 진료기능을 갖춰 기술을 지원하고 대학병원은 인재와 신기술을 키워 보급하는 역할을 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NMC가 고전 끝에 몇 십년 만에 이사를 가는데 이렇게 작은 규모로 가게 됐다"며 "민간병원은 작게 세우고 추후 증축하는 방식이 가능해도 국책사업은 한 번 정하면 돌이키기가 어렵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