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행과 함께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에서 희망퇴직(ERP)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 후속 조치로 인해 노사가 분쟁을 벌인 곳에서 노조 손을 들어준 판단이 연이어 나와 주목된다.
주된 쟁점은 근로기준법상 ▲회사가 직원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고 노력했는지 ▲경영상 긴박하게 필요한 조치였는지 등이었지만, 회사들 입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선 한국먼디파마에서는 ERP를 두 차례 거부한 4명이 휴업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5일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2심에서 "사측의 휴업 조치는 위법·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는데, 이번 일의 발단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사는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당해 8월 말까지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영업부서 직원 90명을 대상으로, 7월 22일부터 8월 1일까지 1차 ERP를 실시했다.
이 때 48명이 위로금을 받고 사직했으며 남은 42명 중 23명은 직무를 부여 받았지만, 나머지 19명은 2차 ERP 대상이 됐다.
최종적으로 이에 4명이 불응하자 이들에 대해 지난해 9월부터 '휴업' 명령이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에 노조는 "부당하고 위법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교섭을 통한 처우 개선 논의를 시도했지만, 회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상황이 지속되자 지난해 12월 노조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업 구제신청서를 제출, 올해 1월 25일 지노위에서 심문회의가 열렸다.
노조는 ▲회사 휴업 명령이 ERP 목표 인원을 정하고 퇴사를 종용한 조치라는 것 ▲회사가 유사 부서로 전환 배치시키는 방식으로 휴업을 회피할 방법이 있지만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점 ▲회사의 재무 상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부당휴업'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답변서와 심문회의 당일 답변을 통해 "글로벌 본사 지침이다. 휴업을 곧장 중지하고 원직복직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했지만, 지노위는 노조 주장을 들어줬다.
회사가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복직을 이행해야 하지만 행정적 처분이기에 강제성은 낮다. 불복한다면 판정서 수령일로부터 10일 이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 청구가 가능하고, 이에도 불복하면 그 다음 법적 효력을 띠는 절차인 소송(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도 남아있다.
또 판정서를 송달받기 전까지 노사 간 합의에 따른 화해도 가능하나 한국먼디파마는 휴업 중인 직원 4명에 대해 2월부터 1개월의 휴업조치 연장 통보를 내린 상태로 화해 여부는 미지수다.
법원 "쥴릭SSK 직원 해고 부당" 판결···회사 항소 장기전
앞서 이와 비슷한 양상은 쥴릭파마서비스솔루션즈코리아(SSK)에서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ERP 시행 후 직원 18명이 '해고'된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서울서부지방법원(11민사부, 재판장 박태일 부장판사)은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SSK의 정리해고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는 부당해고"라는 판단을 내놨다.
SSK는 20명이 속해 있던 PC(Patient Care) 사업부를 없애고 ERP를 실시, 응하지 않은 18명이 해고됐다.
다만 이 부서 직원들 전원이 전년도에 2주 간 파업에 참가했는데, 이후 이를 계기로 주요 고객사들과의 잇단 계약 해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첨예하게 노사가 맞섰다.
노조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해고는 무효"라고 주장했고, 회사는 "악화된 회사 경영상 필요한 조치였고, 해고 회피 노력도 다 했다"고 대응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해고회피 노력 등 근로기준법상 적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문제 발생 전까지 PC사업부가 수년 간 영업 흑자를 기록했고 일부 회사는 피고가 먼저 계약을 해지했다"며 "소수 고객사만 있어도 소수 인원으로도 운영이 가능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1회 파업이 초래한 경영 악화, 고객 신뢰가 중요하고 대체가능성이 많다는 사정만으로 개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SSK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난달 초 항소,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