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책임과 응급처치 형사처벌 면제를 담은 법률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2소위로 회부되면서 의료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법률 개정안과 응급처치 형사처벌 면제가 주 내용인 일명 '착한사마리아인법'을 제2소위로 회부했다.
분만사고 국가책임제는 기획재정부와 예산 다툼이 있고, 착한사마리아인법은 기존 형벌체계의 예외가 생기는 만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의사회)는 27일 성명을 통해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인프라 붕괴를 외면한 정부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분만은 그 자체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의료행위”라며 “의료가 발달한 보건 선진국도 분만 10만 건당 평균적으로 15명의 산모가 사망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경우 1년에 신생아가 약 30만 명 태어난다고 치면 40~50명의 산모는 의료인 과실이 없어도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사회는 “과실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지만 과실이 없음에도 분만을 받는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전문의 증가율 가장 낮은 산부인과, 의사 평균 연령 53세”
또한 의사회는 이미 붕괴가 시작된 산부인과 인프라를 회복하기 위해 조속한 지원을 촉구했다.
2020년 12월 기준 국내 250개 시·군·구 중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23곳, 산부인과가 있어도 아기를 받을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42곳에 이른다.
의사회는 “저출산과 낮은 수가, 분만사고에 대한 무차별적 형사처벌과 수억원대에 달하는 민사소송들로 인해 분만이 가능한 전국 의료기관 숫자가 10년 간 30% 넘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전체 신생아는 감소하지만 고위험 산모는 늘고 있어 분만 위험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전공하는 산과 의사 숫자는 점점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0년 동안 인구 1000명당 전문의 증가율은 산부인과가 가장 낮으며, 전문의의 평균 연령도 53세로 모든 과 중에서 가장 높다.
3년 전 산부인과학회가 전국 산부인과 의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 조사에서 분만을 담당하지 않는 전문의는 절반에 가까운 42.4%로 조사됐다.
분만 진행하다가 중단한 이유 중 최다 원인 '의료사고 우려 등 스트레스'
그중 분만을 하다 그만둔 이유로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 및 분만 관련 정신적 스트레스'(38%) 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산과 의사수도 절벽이 되는 상황이다.
산과 의사의 감소는 모성 사망 증가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평균 모성 사망비는 10만 명당 12.29로 OECD 평균에 비하여 1.5배 높으며, 분만 취약지에서는 모성 사망비가 훨씬 높다.
산부인과를 살리기 위해 일본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 2100억엔(2조500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분만 비용 등을 현실화했고 국가 지원을 늘렸다.
대만의 경우도 분만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신생아 사망에 대해 약 1100만원을 정부가 100% 지불하는 법안을 2015년에 승인하고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가항력 분만사고 보상제도'를 도입했지만, 분만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 과실이 없어도 분만의사가 그 재원의 30%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사회는 “정부는 필수의료인 산부인과를 구제하기보다는 악법을 만들어 분만인프라 붕괴에 가속을 초래하고 있다”며 “특히 산과를 멸망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불가항력 분만사고 국가책임제와 착한사마리아인법의 조속한 통과를 원한다”며 “정부가 또 다시 이를 외면하고 분만 인프라 붕괴를 자초한다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