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前) 의료계는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대학병원 의과대학 교수, 그 것도 자녀가 두명이나 되고 도주 우려가 없는 여성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장정결제를 투여받은 80대 장폐색 환자가 사망했던 이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의사가 구속되는 상황은 드물지 않다. 이전에도 2019년 7월 사산아 유도분만을 시행했는데 산모가 태반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로 사망했던 사건에서 담당의사는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또한 2018년 10월 횡경막 탈장 및 혈흉이었음에도 오진으로 치료시기를 놓쳐 8세 아동이 사망한 사건에서도 담당의사 3명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모두 법정구속됐다.
게다가 장폐색 환자 사망사건에서 구속된 의사는 교수이며 여성이고, 애가 둘이나 있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와 함께 구속됐기에 의료계 분노는 더욱 컸다.
당시와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대해 필자에게 묻는 의사 분들이 있다. 그중 가장 많았던 질문은 ‘의사가 도주 우려가 있다고? 그것도 애가 둘인 여자 교수가?’ 였다.
이에 대해 여러 번 답변했지만 질문을 받을 때 마다 의료계와 법조계의 시각 차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법원이 왜 의사를 구속하는지,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살펴보겠다.
장폐색 환자 사망 사건, 왜 의사가 구속까지 돼야 했나
장폐색 환자 사망 사건은 어떤 측면에서는 전형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다소 이례적이어서 좋은 사례이므로 이 사건을 분석해보겠다.
첫째로, 법원은 왜 의사를 구속할까? 그것은 구속될 만한 ‘실무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피고인이 구속되는 경우는 (판결 이전에는)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유죄 판결 이후에는) 도주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사가 ‘구속’을 결정하는 전제는 ‘유죄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사건에서 법원은 왜 유죄로 판결했을까? 다른 의사가 문제된 의료행위에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종합병원 교수인 감정인이 “해당 환자에서 2~3시간 동안 쿨프랩 2리터를 30분 간격으로 500cc 투여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명확한 의견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사는 감정의견에 따라 ‘전형적으로’ 판단했다.
그럼 법원은 왜 의사를 구속까지 했을까? 그것은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 구속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실형 선고와 함께 피고인을 구속하지 않을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피고인이 두 아이 엄마인 대학교수임에도 도주 우려가 전혀 없는 경우로 보아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다소 이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속 여부 결정에 관해서는 판사에게 폭넓은 재량이 부여돼 있으므로 이를 잘못된 판결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법원은 의료과오 사건에 있어 아주 경미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의사 감정의견을 확인하지 않고 유무죄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반면 일단 유무죄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면, 법원은 구속 여부에 결정함에 있어 피고인이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기는 하지만 이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의사 개인, 사건 초기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 조력 받아야
둘째로, 의사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쉽지만 모든 형사사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마법 같은 ‘구속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사건 진행 결과를 면밀히 살피고 섬세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마치 중증 환자를 경과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진료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진행 경과에 따라 수사기관과 판사 심증은 계속 변화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심증이 수사·재판에서 미묘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이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 즉 변호사가 아니라면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능한 사건 초기인 수사 단계부터 변호사 조력을 받는 것이 최선이다. 몸이 안 좋을 때 혼자 이리저리 고민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하기보다는 빨리 의사를 찾아가 진료받는 것이 최선인 것과 같다.
셋째로 그러면 의사 구속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가능할까?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쉽지는 않다. 사실상 유일한 해결방법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주체에서 ‘의료인’만 분리해 규율 대상으로 삼는 가칭 ‘의료분쟁특례법’ 입법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내더라도 종합보험에 가입했으면 ‘12대 중과실’을 제외하고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규정한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차량 운전 시의 과실로 다수의 운전자가 전과자가 되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국가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료행위 시 과실에 관한 법은 만들지 않았다. 이런 국가 무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운전면허 소지자는 3300만명이지만 의사면허 소지자는 13만명에 불과하고, 경제력이 천차만별인 운전자들에 비해 의사들은 비교적 경제력이 있어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의사 소신진료 보호 위한 ‘의료분쟁 특례법’ 절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의료행위에는 의도치 않은 악결과가 일정 비율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행법은 이러한 의료행위의 본질적 위험을 단순히 의사 책임으로 방치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의사 구속은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소신 진료는 위축되고 방어진료 유령이 진료실을 배회하게 된다.
의료계 분노를 전달하기 위한 항의성명이나 법원 앞에서의 피켓팅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런 의료계 반응은 ‘의료과실 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돼도 의사는 구속하지 말라’는 요구로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에게는 의사에게만 특권을 달라는 것으로, 법원에는 재판 독립을 침해하거나 평등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것으로는 의사 구속을 막기 어렵다는 점은 그간의 경험이 방증한다.
의료분쟁특례법의 입법은 단순히 의사 구속을 막는 것을 넘어 의사 소신 진료를 보호하고 전체 의료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의료분쟁특례법 입법에 대해 의사들을 포함 의료계의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기대해본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의사가 안심하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것,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