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과 의료인면허박탈법 2개 악법 저지 임무를 받았지만, 면허박탈법을 놓친 것은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와 불협화음없이 투쟁을 잘 마무리하고 회원들의 유례없는 성원에 감사하다."
박명하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7월 1일 서울 의협회관에서 열린 비대위 해단식 전(前) 의협 기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그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비대위는 지난 2월 9일 간호법과 면허박탈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상정, 의결된 긴박한 상황 속에 탄생했다.
이필수 집행부만으로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비대위 체제 전환에 나선 것이다. 2월 18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비대위 구성이 의결됐고, 23일 대의원 직선으로 박명하 위원장이 선출됐다.
서울시의사회장이었던 그는 곧바로 비대위원 50명과 시도회장을 자문위원회로 둔 비대위를 구성하고 세부 조직까지 완비하며 3월 4일 공식 출범했다.
박명하 위원장은 "의협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간호법 제정 시도를 2년여에 걸쳐 힘겹게 막았지만 올해 2월 패스트트랙으로 국회 본회의 직권 상정, 의결됨에 따라 회원들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개 법안을 모두 저지하기 보단 더 급한 간호법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며 "법안 최종 통과가 임박한 시점이라 주어진 시간도 적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시행으로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때로는 전면에서 강력한 행동으로, 때로는 후면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략적으로 투쟁 수위를 조절했다"며 "국회와 정부, 그리고 언론과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과 광폭 행보로 숨 돌릴 틈 없이 달렸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의협과 비대위 불협화음없이 간호법 저지, 의미 있는 성과"
실제 박명하 위원장은 두 법안 저지를 위해 60일이 넘는 철야 농성 , 단식 , 국회 앞 1인 시위 등에 뛰어들었다. 대신 13개 보건의료복지연대가 주축이 된 총파업 집회에선 의협이 정면에 나서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의협과 비대위 관계 정립은 어려운 점이 많다"며 "역대 비대위 출범 후 집행부와 갈등 및 불협화음이 노출된 사례가 많았고, 이런 갈등이 결국 비대위 성공의 장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음 회장 선거에 나올 인물을 배제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며 "저는 악법 저지라는 목표 달성이 중요하다고 여겨 비대위원장의 명예를 높이려는 사사로운 욕심도 버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의협 집행부도 간호법 저지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물신양면 지원해줬다. 규정 때문에 소소하게 시차가 발생한 일은 있었지만 상호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배려하며 투쟁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5월 16일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됐고, 같은 달 30일 본회에서 최종 폐기됐다. 의료인 면허박탈법은 아쉽게도 통과됐다.
박명하 위원장은 "면허박탈법은 당장은 회원들에게 큰 분노로 와닿을 수 있지만 재개정을 통해 돌이킬 여지가 있다"며 "반대로 간호법은 단기에는 피해가 적을 수 있지만 그 파장은 댐의 구멍처럼 돌이킬 수 없는 재난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2020년처럼 젊은 의사들 참여를 잘 이끌어내지 못한 부분"이라며 "2020년 투쟁 당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고 조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 위원장은 "면허박탈법은 이필수 집행부가 적극 나설 것이며, 저는 서울시의사회장으로서 해당 법안 재개정에 힘을 보탤 것이다. 그동안 비대위 지침에 따라준 전국 광역시도 의사회장들과 임원들 그리고 투쟁 성금을 기꺼이 쾌척했던 33개 단체와 363명 회원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고 거듭 사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