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 의료계와 산업계를 필두로 원격의료 시행의 선결 조건이 극명히 엇갈려 의료계의 관심이 쏠렸다. 예상대로 원격의료의 시행 과정에서 가장 격렬했던 찬반의 충돌 지점은 바로 ‘초진’과 ‘재진’ 여부였다.
원격의료를 초진부터 적용할지, 재진부터 시행할지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의료계는 재진을 중심 의견으로 모았지만, 산업계는 초진을 중심이 주류를 이루는 상반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결론적으론 초진으로 결정됐지만,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는 등 격렬한 진통을 겪었다. 그렇다면 원격의료를 제도화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의료계 “원격의료 실시 필수조건=초진 환자 대면”
대한개원의협의회는 건보재정 부족으로 적정 수가조차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산업계의 개입은 의료비용 증가만 불러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산업계가 산업 확대라는 미명하에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주장하는 것은 의료비용 증가로 국민 부담 확대는 기정사실이라는 주장이다.
대개협은 “정부는 시간과 비용이 투입해 제3자 개입이 없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프로그램 및 장치 개발해야 한다”며 “개인의료정보 보호 등을 적법하게 다룰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기관 및 사람들에 의해 모든 과정이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정책은 환자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전문가 의견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는 태도다. 비대면 정책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 경제적 준비, 시스템 구축, 사법적 준비 등을 완비하고 시행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도 ‘비대면 진료 필수 조건 연구 보고서’를 통해 비대면 초진 비대면의 절대 불가와 재진 허용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 시행 시 주기적으로 대면진료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김진숙 글로벌헬스팀장은 "초진 비대면 시 기존 질환과 건강 상태 등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불완전한 시진과 청진만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면 진료에서는 시진·청진·촉진·문진·타진을 종합적으로 진단 및 처방할 수 있지만, 비대면 진료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초진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하면 건강을 침해할 수 있는 위험성이 더 높다는 해석이다.
보고서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1차 의료기관을 이용 경증질환자는 초진 중심, 대학병원은 방문을 통해 진료와 수술을 받은 중증이상 질환자에 대한 재진 위주 및 비대면 진료 초진 시 중증으로 판단 시 내원 안내 등이다.
필수의료 부족 사태로 주목과 소아청소년과도 원격의료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
현재 소아과는 오픈런(open run)이라 표현될 만큼 부족사태를 겪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이를 타개할 방법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필수의료 부족 사태 핵심 ‘소아과’, 불편한 시선 확연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단계 조정과 함께 비대면 진료를 급하게 시범사업으로 전환해 연장 시행함에 따라 충분한 준비 없이 진행되는 소아청소년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는 코로나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2023년 6월 1일부터 시범사업으로 전환해 시행을 발표했다. 휴일과 야간의 경우 대면진료 기록이 없는 18세 미만 소아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토록 했다.
처방은 불가하나 급성기의 간단한 증상이라 할지라도 위험성 과소평가가 금물인 소청과 진료 특수성상 이 같은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상의 초진 허용이라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및 해결 방안도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소아 특성상 문진만으론 원인 확인이 어려워 오진이나 진료 지연으로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제도 시행에 앞서 철저한 검증과 연계 대면진료 시스템 구축이 전제돼야 소아청소년의 건강과 안전 위협이 최소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 우리나라 비대면 진료의 안전한 활용을 위한 법적 제도 미비를 지적했다.
국회에서 의료법 개정을 통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 완료 이전에 충분한 검토없이 소아청소년 비대면 진료를 강행하면 환자들 안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시범사업 추진에 앞서 비대면 진료의 법적, 제도적 정비를 완결한 후 적절한 대상 환자에 국한해서 안전하게 제한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전문가 의견수렴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소아청소년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극심한 외래진료 대기, 응급진료와 입원진료 지연은 저수가에 기인한 문제로 대면 진료 공백이 문제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례 강원도 주목
이미 과거 격오지 등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오랜 기간 진행한 사례가 있다. 바로 강원도의 치매원격의료 지원사업이다.
시범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주진형 교수는 각종 치매 관련 토론회를 통해 원격의료를 활용한 초진의 어려움을 수차례 피력한 바 있다.
물론 치매라는 특성상 진단의 중요성이 큰 만큼 초진은 대면, 이후 관리 등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방향이다. 물론 효과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지만, 일부 관리 등에는 한계도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022년 11월 개최된 한국원격진료학회의 원격치매 심포지엄을 통해 주진형 교수는 치매 원격 진료는 초진 이후 환자를 추적 관리하는 재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주진형 교수는 “치매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검사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비대면 원격진료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초진 이후 재진에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면 산업계는 의료계와 정반대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책정된 수가 오히려 국민 의료비 증가를 부른다는 것. 이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인 모습이다.
복지부는 지난 5월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방안을 공개하고 의료기관과 약국에 시범사업관리료를 추가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는 늘어나는 업무량 등을 고려한 지원이다.
의료기관은 진찰료의 약 30%, 약국은 약국관리료, 조제기본료, 복약 지도료의 약 30% 수준의 수가를 비대면 진료 관리료 명목으로 지급받는다.
복지부가 시범사업 최종안 공개 직후 산업계와 시민단체가 일제히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등이 모여 만든 원격의료산업협의체는 성명서를 통해 복지부의 졸속 시범사업에 대해 지적했다.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의사와 약사의 수가를 개설해 책정함으로써 보험재정에 부담을 늘렸다는 의견이다.
원산협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국민의 범위는 축소했지만, 의약계를 위한 수가는 외려 증액했다”며 “건강보험 적립금 소모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비대면 진료가 건강보험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비춰봐도 원격진료 수가가 일반 진료보다 높은 국가는 소수라며 비대면진료는 편의성은 높이고 재정적 부담은 줄이는 방식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단체별로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비대면에 대한 선결 조건이 혼란스럽지만, 사실상 초진 대면 원칙이 고수될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