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수혜로 호황을 누렸던 국내 체외진단 의료기기 업체들이 파트너사와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양측이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면서 갈등이 수백, 수 천억원에 이르는 소송전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많은 소송을 치르고 있는 곳은 휴마시스다. 휴마시스는 진행 중인 소송만 8건이다. 휴마시스가 원고인 소송은 5건이며 피고인 소송은 3건이다.
소송 중 규모가 가장 큰 소송은 셀트리온을 상대로 제기한 건이다. 금액은 무려 1206억으로 휴마시스 지난해 총 매출액(4716억원) 4분의 1 수준이다. 해당 소송은 현재 1심 진행 중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진단키트 공급계약으로 분쟁을 빚고 있다.
휴마시스는 앞서 2020년 6월 셀트리온과 코로나19 항원 신속진단키트 공동연구 및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셀트리온 미국법인을 통해 미국 시장에 납품을 시작했지만 납기 문제로 갈등이 촉발됐다.
셀트리온은 “휴마시스가 납품 시기를 지키지 않았다”며 “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시장 경쟁력과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휴마시스는 “셀트리온이 납기일이 다가오자 일방적으로 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단가 인하를 수용하지 않자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셀트리온도 휴마시스에 60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131억원대 부동산 가압류 소송을 제기했다. 부동산 가압류 소송의 경우 지난 3월 1심 재판에서 셀트리온이 승소한 상태다.
휴마시스 관계자는 “이번 계약 해지는 셀트리온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에 따른 건으로, 손해배상 청구 등을 비롯한 적극적인 대응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 측도 “소송대리인을 통해 법적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휴마시스는 또 국내 콜드체인 유통사 디엘팜을 상대로 물품대금을 청구하고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하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현재 1심 절차를 밟고 있으며 규모는 각각 3억원이다.
실험용 기기 판매업체 지이솔루션과도 계약해제 및 원상회복 등과 관련한 1억원 규모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제이더블유에셋매니지먼트와도 경영권 분쟁으로 2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미국서 소송 중인 엑세스바이오 vs 인트리보
미국에 본점을 두고 있는 엑세스바이오도 현지 의료기기 유통업체 인트리보와 분쟁을 겪고 있다.
특히 1조원이 넘는 피해 책임을 두고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법정 공방도 불사하고 있다.이들 업체의 마찰은 2021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엑세스바이오는 당시 현지 의료기기 유통업체인 인트리보와 코로나19 진단키트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은 총 2471억원 규모다.
그러나 그해 말 인트리보는 엑세스바이오가 자사를 통하지 않고 자체 유통을 시도했다며 자사에 공급하는 제품 외에는 생산 및 공급을 하지 말라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현재 가처분신청은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인트리보는 미국중재협회에 중재 청구를 신청했다. 특히 10억달러 이상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냉전이 격화하면서 인트리보 역시 엑세스바이오에 물품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엑세스바이오도 2022년 4월 인트리보를 상대로 8000만달러에 대해 법원에 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중재 청구를 신청한 상태다.
현재도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데다 양측이 합의 여지가 없는 만큼 갈등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SD바이오센서 vs 래피젠 ‘실용신안’ 분쟁
특허 문제로 분쟁 중인 사례도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래피젠과 ‘체외진단 검체필터용 케이스’ 실용신안 침해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실용신안은 특허의 일종으로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물품 형상과 구조, 조합 등의 고안에 관한 권리를 말한다.
래피젠은 “에스디바이오센서가 자사 실용신안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에스디바이오센서는 반대로 해당 실용신안 소유권이 유효한지를 두고 사실관계를 다투고 있다.
해당 실용신안은 검체필터 케이스 상단에 구멍이 나 있는 사례다. 체외진단을 하는 동안 희석액 튜브를 케이스에 거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래피젠은 지난 2018년 7월 실용신안심사를 청구하고 출원인으로 등재했던 상황이다.
그러나 래피젠은 에스디바이오센서가 해당 실용신안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2021년 8월 ‘실용신안권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과 ‘702억원대 손해배상’을 각각 청구했다.
래피젠 소송에 에스디바이오센서도 2022년 1월 실용신안 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대응에 나섰다. 래피젠 실용신안 등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용신안 등록 무효 심판은 ▲실용신안 등록 요건 ▲선(先)출원 ▲변경출원 등 특정 상황에 해당하면 청구할 수 있는 조치다. 실용신안 등록 무효 심사가 확정되면 그 실용신안권은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간주한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특허심판원에 실용신안 무효 심판을 청구했고 최근 심판원에서 무효 결정을 받아냈다. 실용신안권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도 승소를 따냈다.
그러나 래피젠은 특허심판원 무효 결정에 반박하고 있어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래피젠 측은 “에스디바이오센서가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면서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해갈 것”이라고 전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 측은 사안이 진행 중인 만큼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