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눈물은 H2O, Na, K, Cl, glucose, ca 등으로 이뤄져 있다. Na(Sodium)이 145mEq/L 농도로 들어있기 때문에 눈물은 짜다.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그렇다.
나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은 지역에 근무하고 있다.
서울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평생 안 가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중에서도 안과는 정말로 하나도 안 보일 때쯤(최소 안전수지 정도)에야 ‘침침한 듯 하니 약이나 좀 타러’ 동네병원에 마지못해 가는 분들이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 지역 원장님들께서는 환자가 현미경에 턱을 올려놓자마자 깜짝 놀라 의뢰서를 손에 쥐어주며 ‘딴 데로 새지 말고 큰 병원에 당장 가보라’고 으름장을 놓으신다.
하지만 먹고 살기가 바쁜 우리 환자들은 서랍에 의뢰서 봉투 째로 잘 넣어두고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그 때 동네 원장님이 한 번 가보라고 한 것이 이제 생각나’ 몇 달, 때로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외래로 걸어오신다.
그 과정에서 간단한 병도 엄청나게 키워 오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니 대체 왜 이제야 오셨냐’고 화를 내면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눈이 뭐 대수냐’며 그저 웃는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그동안 약간 안 보였고 어디선가 백내장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지만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고 일이 바빠 그냥저냥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드디어(?) 아예 보이지 않게 돼 겨우 짬을 내 약이나 타러 병원에 왔단다.
마주 앉은 환자의 동공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새하얗다. 더 볼 것도 없이 최소 몇 년은 푹 묵힌 과숙 백내장이다. 수련받는 동안에는 일 년에 두세 명 볼까 말까 했던 드문 케이스인데, 여기서는 이런 환자분이 1, 2 주에 한 명씩은 외래로 불쑥 나타난다.
“약으로는 치료 안 되나요”···수술·검사 꺼리는 눈이 하얀 환자들
맨눈으로 봐도 눈이 하얀데 주변에서 아무도 병원 가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부터, 지난달까지는 정말로 보는 게 나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다는 본인 진술까지 도대체 진료 때 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백내장이 심한데도 현미경 앞에 앉으면 일단 본인 형편이 어려워 비용이 많이 들면 수술을 받을 수 없어, 다 해서 얼마나 드냐고 묻는다. 감당 못할 돈이면 검사도 할 필요 없이 그냥 살겠다고 하신다.
약값 정도는 어떻게든 벌 수 있으니 약으로는 치료가 되는지 물어보는, 눈이 하얀 우리 환자들.
눈이 잘 보여야 일도 오래오래 할 수 있으니 수술은 꼭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수술비 30만원짜리 안내문이 어쩐지 허름한 대문에 억지로 붙인 미납세금 최고장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이곳엔 일을 하다 다쳐서 오는 외상환자도 참 많다. 나름 외상 처치 경험이 꽤 있다 자부하며 근무를 시작했지만, 기상천외한 모습의 환자를 거의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다. 단순히 그 수가 많을 뿐 아니라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각종 화상, 열상, 천공상, 이차성 감염 등 case report로나 한 번 스치듯 봤을 법한, 너덜너덜한(?) 환부를 마주하면, 눈으로는 현미경을 보고 있지만 입에서는 “아니 이게 대체 뭐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더 놀라운 건 이 모습을 하고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의 환자들인데, 다친 직후에도 ‘괜찮겠지’라며 일을 며칠 더 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난주에 눈에 뭐가 튀긴 했지만 별로 아프지도 않고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계속 일하다 짬을 내 오늘 동네의원에 갔더니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을 했더니 오는 길에 배가 매우 고파 방금 설렁탕도 한 그릇 맛있게 먹고 왔는데 대체 돈 많이 드는 응급실은 왜 가라고 한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 느끼기에 아무렇지도 않은데 혹시 눈에 뭐 문제 있냐고 묻는 응급실 환자의 눈은, 벌어진 각막 열상 사이로 홍채가 튀어나와 있었다.
“아니 환자분,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물으실 때가 아니고요. 눈에 홍채가, 홍채 아시죠? 검은 동자 말이에요. 그게 눈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요. 이거 전신마취하고 당장 수술을 받으셔야 해요.”
“검은 동자? 그것 때문에 수술까지 해야 되나? 난 괜찮은데 수술하면 내일은 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빨리 해주세요. 일하러 가야 해.”
눈에서 방수가 줄줄 새고 있는데도, 시력이 거의 안 나오는데도, 어디 피부 살짝 벌어진 상처 꿰매듯 빨리 처치받고 집에 가서 일할 생각만 하는 모습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입원 기간 줄이려 전신마취 아닌 국소마취 요구하기도
원칙적으로 전신마취 하 시행하는 열상수술 후 입원 기간은 약 2주다.
수술 경과가 좋아 단순 각막 봉합만으로 처치가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복합 손상으로 인해 출혈이 심하거나 구조물의 완전 재건이 어려울 때가 많아 감염 위험도 크고, 지연성으로 눈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수련 받을 때 항상 그렇게 설명했고 환자분들도 다 나으면 나가게 해달라며 입원 자체를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2주 정도는 반드시 입원해야 한다고 하면 되레 그냥 수술을 안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사유는 역시나 먹고 사는 문제.
“입원 그렇게 오래하면 일하는 데서 잘려요. 안 돼요, 안 돼. 그냥 수술 안 하면 안 되나? 별로 안 아픈데 일 오래 못하면 뭐 먹고 살아. 수술 안 해서 안 보여도 어쩔 수 없지.”
당장 내일 일을 해야 해서 안 보여도 어쩔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무섭고도 안타까운 말인가? 오늘은 오신 김에 수술 얼른 하고 2주 입원이 힘들면 일주일, 아니 5일 만이라도 계시면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다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거듭 애원을 하고서야 마지못해 수술을 한다.
그리고 다들 마취에서 깨자마자 일하러 갈 궁리를 한다. 전신마취하면 다음날까지 입원해야 하니 국소마취로 해 달라고 통사정을 해 열상 봉합 후 당일에 집에 가버린 환자도 있다. 아무리 입원을 더 해야 하고 더 쉬셔야 한다고 말해도 영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렇게 수술 받은 분이 퇴원 후 며칠 안 돼 외래로 오신다. 절대 일 안 했다고 말하는 환자의 반대쪽 눈에도 이물이 튄 흔적이 있다.
댁에서 회복하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설마 그새 일 시작하셨냐고 물으면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다, 잠깐씩만 일 나갔었다고 실토하신다.
원래 반드시 쉬셔야 한다. 정 못 쉬시면 약이라도 들고 다니면서 꼭 넣고, 보호용 안대를 착용하시라고 주의사항을 재차 강조하지만···.
현장 일은 중간에 약 넣기가 힘들고 보안경을 쓰면 김이 서려 작업을 못 한다. 돈을 벌어야 해서 안 나갈 수 없으니 이러다가 안 보여도 별 수 없는 거라며 눈치를 보며 허허 웃는다.
누가 쉬기 싫어서 일을 하겠는가? 누가 정말로 안 보여도 되겠는가?
그저 우리 환자들의 삶이 기본적인 회복 기간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빡빡하고, 다쳐서 속상할 틈조차 허락받지 못했기에 의사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그저 일터로 향하는 것 뿐이다.
한쪽 눈을 심하게 다치고도 먹고 살기 위해 또 일을 하러 나가야만 하는 삶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 또한 무겁다. 두 눈으로도 버티기 쉽지 않던 삶이 한 눈으로는 얼마나 더 힘들까?
땀과 먼지에 절은 작업복 차림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덤덤한 그 얼굴들에 나도 모르게 목이 뜨거워지곤 한다.
도와줄 수 없던 보호자의 축 처진 어깨
지난주에는 외래로 장애를 가진 환자와 보호자가 오셨다. 누가 봐도 형편이 좋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호자가 홀로 집에서 환자를 케어하는데,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시력이 떨어진 듯한 행동을 해 검사와 치료를 받으러 오셨다고 했다.
문제는 안과검사 시 의사 표현과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우리 환자분은 지적장애가 심해 의사소통이 안 될 뿐더러 검사를 시도하면 물건을 던지고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검사자를 붙잡으려 했다.
차라리 아예 거동을 못하는 분들은 어떻게든 가능한데 그 환자는 누군가 접근하면 싫다고 온몸으로 격렬히 표현하는 터라, 휴대용 현미경을 포함한 모든 검사가 불가능했다.
비단 검사 뿐 아니라 보호자가 홀로 케어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모든 병원에서 아무것도 안 된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까지 오셨다고 했다. 죄송하지만 이럴 때 대학병원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는 없다.
환자가 전혀 협조하지 않으면 검사는 불가능하고 설사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 발견된다 해도 수술 후 관리가 안 되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그런 의례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보호자 눈에 눈물이 비쳤다.
보호자는 이 아이 때문에 일도 못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먹고 살 길도 없어 그저 이대로는 죽고싶다며 숨죽여 울먹였다.
시설에 입소할 자격도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자 집에서 매일 같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더 안 보이게 되며 돌보기도 몇 배로 어렵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
정말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이 지내야 하냐며, 제발 어떻게든 검사해서 고쳐 주시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다.
아, 그 자리에서 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 잘 오셨다며 뚝딱뚝딱 고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 또한 굴뚝 같았지만 현실적으로 몇 줄짜리 진단서와 약간의 안약, 그리고 묵묵히 들어드리는 것 밖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환자는 검사를 안 한다고 하니 신이 나 휠체어에 다시 앉아 나가자고 재촉한다. 낙담한 얼굴로 간신히 휠체어를 밀고 문을 나서는 보호자의 축 처진 어깨가 너무나도 야위어 마음이 시렸다.
환자들이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는 존재
함민복 시인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들을 살뜰히 챙기는 어머니를 그의 시에서 덤덤히 묘사한다. 지낼 곳 조차 마땅치 않아 친척에게 의탁하러 가는 길에도 어머니는 자신의 설렁탕 국물을 부어주며 마찬가지로 삶이 쉽지 않은 그의 아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시인은 그 사랑과,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소리내서 울지도 못한 채 읊조렸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시인이 그러했듯 어렵고 힘든 형편의 사람들은 오히려 큰 소리로 울지 못한다. 괴로움은 그저 마음으로 삭인 채 주어진 오늘의 삶을 살아갈 뿐. 마주앉은 사람 또한 요란하게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같이 울 수는 없다.
의사란 환자들이 힘들고 도움이 필요할 때,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 그저 못 본 척 눈감아주고, 먹히지도 않을 잔소리지만 다시금 늘어놓을 따름이다.
어느덧 이곳에서 환자들과 함께 한 지 반년 째, 이제는 알 것 같다. 우리 환자들 삶에서 고통이 마치 소금과 같아, 그래서 눈물이 그리 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