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下] 다양한 질환 영역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높은 혈액점도 활용도 향상을 위해 표준화된 진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혈압·혈당·콜레스테롤 등의 경우와 달리, 정상범위에 대한 표준화된 진단 기준이 없어, 과학적 근거를 개발하는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혈액점도 정상 범위 설정 필요···현실은 진단 도구로서 가치 있지만 기준 부재
일례로 산부인과 영역에서 혈액점도는 임신 합병증을 예측하는 진단적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이영주 경희의료원 교수는 “임신 중반까지 혈액점도가 감소하고 후반기에 증가하는데 색전증 발생은 임신 후반기부터 증가한다.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면서도 “정상치 확립을 위해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전신 조직·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혈액순환에 어느 수준의 점도가 도움이 되고, 또는 도움이 안되는지 등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병권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혈당·콜레스테롤 수치 등 정상범위와 치료 가이드라인이 있는 지표들과는 달리 혈액점도는 아직 명확한 정상범위값이란 게 없다”며 “실제 질환에 적용할 수 있게 표준 기준을 만들어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진단적 가치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두상 중앙보훈병원 과장은 “혈액점도를 진단 도구로서 가지게 됐지만 이 도구 자체가 제공하는 변별력은 아직 크지 않다”면서 “단 몇백명으로 정상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성질환과 혈액점도 유관···10만명 이상 장기코호트 연구 국가 지원 필요
이에 혈액점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장기 코호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국가가 관리를 주도하고 있는 만성질환인 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은 모두 혈액점도와 관련이 있고, 이에 대한 연구도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병권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는 “10만명 단위를 넘는 대상자를 5년, 10년 간 연구해서 혈액점도를 낮출 때 어떤 임상적 유용성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게 필요하다”며 “그런데 아직 혈액점도 개념 자체도 일반화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여건 상 대규모 연구가 불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나라는 검진센터를 많이 운영하고 혈액검사를 상당히 많이 하는 나라다. 검진항목으로 혈액점도를 추가하고 각 임상 진료과 및 병원에 세팅해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하면 정책적 의제는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국가 지원이 이뤄지려면 혈액점도에 대한 국민·의료진 인식 제고도 병행돼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김원호 국립보건연구원 과장은 “혈액점도만으로 국가 사업화시키기에는 예산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상지질혈증·고콜레스테롤혈증 등은 국민이 잘 알지 않나. 현실적으로는 여기에 붙여서 사업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질환 예방 활용···점도 낮추는 헌혈 권장 등 국민인식 전환
혈액점도에 대한 인식 제고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근래 의료패러다임은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의료진 입장에서 혈액점도가 정상범위에 대한 표준 근거를 갖춘다면 이를 예방 수단으로 활발히 사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문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혈액점도는 뇌경색을 유발하는 혈역학적 문제와 연관되는데, 절대값이 없기 때문에 질환 진단적 가치는 없지만, 환자의 악화 또는 호전이 점도와 연관있다는 것을 파악한다면 예방하는 방향으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국민에게 혈액점도 관리와 질환 예방의 연관성을 알리는 것도 과제다.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쉽게 혈액점도 감소를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헌혈을 꼽았다.
김두상 중앙보훈병원 과장은 “헌혈을 자주하는 분들이 건강하다고 알려져 있고, 월경하는 가임기 여성 등 주기적 실혈(失血)이 일어나는 사람이 심혈관계 질환 발병이 낮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병권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도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낮추면서 피가 모자란 사람을 돕는, 나를 나눔으로써 나도 좋고 너도 좋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근거를 통해 도출하면 전세계적 보건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