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설·추석 농축산물 선물 가격 상한을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의료계와 제약계는 큰 동요가 없는 모습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 7년 동안 부정청탁 문화가 많이 개선됐고, 금품은 물론 선물이나 식사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이 축소된 만큼 상한액 조정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1일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등 선물 가액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상한액을 기존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상향하고, 설날과 추석 명절의 경우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조정하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아울러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선물 범위에 온라인 모바일 상품권과 문화 관람권을 포함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상품권 등 유가증권은 선물 범위에서 제외되는데, 최근 비대면 선물 문화를 반영해 이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권익위는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집중호우, 태풍, 가뭄 등 자연재해와 고물가, 수요급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축·수산업계 및 문화·예술계 등을 지원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가 잇따라 김영란법 기준 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의료계와 제약계는 무덤덤한 반응이다. 이미 김영란법이 자리잡은 만큼 동요할 일이 없다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의료계에는 ‘관행’으로 용인돼던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거나 축소, 폐지됐다.
당장 의과대학에서 스승의 날이나 정년퇴임식 풍경이 바뀌었다. 후배나 제자들이 각출한 돈으로 선물이나 꽃다발을 전달하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각종 사은행사의 풍속도 변화는 지난 2017년 불거졌던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 골프채 정년퇴임 선물 사건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정년퇴임을 맞은 교수에게 후배와 제자 17명이 70만원씩 모아 일본산 아이언 세트와 드라이버 1개 등 총 730만원에 달하는 골프채를 선물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퇴임교수는 물론 선물을 제공한 교수 18명 모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혐의는 인정되지만 정상 참작할 부분이 있다며 기소유예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시켰다.
이후 스승의 날이나 정년퇴임식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선물이 오가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일각에서는 아예 행사 자체를 치르지 않는 곳도 생겨났다.
‘김영란법’ 요주의 분야였던 제약업계 역시 이번 개정안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미 오래 전 의료진 상대 ‘선물 금지령’이 자리잡은지 오래고, 김영란법 제외 대상을 위한 선물도 법 테두리 내에서 지원하고 있는 만큼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그동안 설, 추석 명절에 배정된 선물 관련 예산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상한가격이 인상됐다고 해서 예산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한 중견제약사 임원은 “명절 선물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며 “김영란법 시행 이후 선물 자체를 거절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어 “예산이 이미 책정돼 있는 상황에서 선물 상한액이 늘어났다고 즉각적인 반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가격을 떠나 이젠 안주고, 안받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