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당국이 고령층의 의약품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한 약가인하 협상 대상 10개 의약품을 공개했다. 제약계는 소송전을 불사하며 격렬히 반대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도리어 협상 대상을 점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약가에 영향은 없을 전망이지만, 다국적 제약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국내 바이오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8월 29일 "약가인하 협상 대상 의약품 10개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10개 의약품은 엘리퀴스, 자디앙, 자렐토, 야누비아, 파시가, 엔트레스토, 엔브렐, 임브루비카, 스텔라라, 피아스프 등이다.
백악관은 의약품 선정 기준에 대해 연방정부의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서 가장 비싼 의약품들이 있는 파트D(전문의약품 보험)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고령자와 65세 미만 영구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이번에 선정된 10개 의약품은 파트D에서도 지출액이 최다인 의약품 중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 이후 7년 이상 경쟁 의약품이 없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최대 900만명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10개 의약품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며 “이들은 파트D에 등록된 의약품 구입에 1인당 연간 평균 6497달러(약 860만원)를 지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약가인하 협상은 지난해 8월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일환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의료보험 확대와 기후변화 대응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10개 의약품에 대한 협상은 약 2년 정도 소요된다. 합의된 협상 가격은 2024년 9월 1일까지 발표돼 2025년 최종 가격이 결정된다. 최종 가격은 2026년부터 적용된다.
각 제약사는 오는 10월 1일까지 협상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면 메디케어 적용 의약품에서 제외되거나 의약품 매출액의 최대 90%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다.
이와 관련, 현지 제약계는 반발하고 있다. 미국 머크, BMS 등이 개별적으로 8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미국의약연구제조업협회(PhRMA)는 올해 초 연방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제약사들이 과중한 세금의 위협 하에 정부가 지시하는 가격에 동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보건당국에 너무 많은 가격 결정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반발에도 미 보건당국은 약가인하 협상 대상을 지속 확대할 예정이다. 2027년에는 파트D에서 15개, 2028년에는 파트B(의료 보험)와 파트D에서 15개, 이후에는 매년 20개의 약품이 추가 협상 대상으로 선정된다.
국내 바이오산업 투자 영향 속 가격 경쟁력 '제네릭·바이오시밀러' 진입 풀릴수도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이번 정책에 대해 “고비용 의약품에 대한 상당히 강도 높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국내 의약품 가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오기환 전무는 “미국은 인플레이션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올라간 의약품 가격을 낮추려는 것”이라며 “반면 한국은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미 워낙 낮은 가격으로 책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약가인하를 더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 국내 바이오산업에는 영향을 끼칠 여지가 있다.
오 전무는 “협상 대상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사는 매출이 줄면 자연적으로 연구개발비도 감소할 것”이라며 “기술이전이나 M&A가 움츠러들면서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간 경쟁 대상이 없던 의약품의 제네릭 또는 바이오시밀러가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
그는 “제약사에서 제네릭이나 바이오시밀러의 진입을 의도적으로 막기 위해 특허를 적응증 별로 계속 쌓는 방어전략을 취했다”며 “약가인하 협상으로 인한 손해가 너무 크다고 판단되면 그간의 방어전략을 접고 시밀러의 진입을 풀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