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등장으로 당뇨병 치료에 대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인슐린 펌프 시장에 드리운 먹구름만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인슐린 펌프 대표기업인 미국 인슐렛 주가가 지난 9월 22일 155.7달러로 마감했다. 약 2달 전인 7월 14일 종가 290.89달러에 비해 약 46.5% 하락한 수치다. 또 다른 인슐린 펌프 기업인 텐덤 주가도 2달 전과 비교해 약 45% 떨어졌다.
하락 배경에는 비만치료제라 불리는 GLP-1 작용제가 있다.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와 일리야릴리 GLP-1 작용제가 15~20%에 달하는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슐린 펌프 사용자가 줄어들 거란 전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인슐린 펌프는 지난해 미국 내분비학회가 제1형 당뇨병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도 권고하는 등 중요성이 대두되던 상황에서 GLP-1 작용제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더군다나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이 이달 7일 GLP-1 작용제가 제1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투여를 줄이거나 중단하게 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발표하며 인슐린 펌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가중됐다.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펌프의 주 사용층이기 때문이다.
인슐린 펌프 기업들은 GLP-1 작용제가 미칠 영향을 낮게 평가하면서 분위기 전환에 안간힘이다.
짐 홀링세드 인슐렛 최고경영자(CEO)는 8월에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GLP-1 작용제가 인슐렛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인슐렛은 뉴욕주립대의 연구가 10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라는 점에서 인슐린 펌프의 장기적 전망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메드트로닉의 제프 마타 CEO도 금년 5월 “23억달러 규모 당뇨병 관련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1형 당뇨병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8월 말 실적 발표에서도 “GLP-1 작용제가 우리 사업과 의료기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국 증권사 BTIG는 최근 보고서에서 “GLP-1 작용제는 부작용과 급여 적용 등 몇 가지 진입장벽이 남아있다”며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펌프 보급률이 한 자릿 수로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슐린 펌프 시장에 대한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런 전망에도 GLP-1 작용제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수록 인슐린 펌프에 대한 투자심리는 얼어붙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GLP-1 작용제인 위고비가 2024년말까지 품귀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가운데, 이달 5일에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유럽기업 중 시총 1위에 올랐다.
반대로 인슐렛은 홀링세드 CEO가 8월 말 자사주를 약 100만달러(약 13억원) 매입한 직후에도 반등의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GLP-1 작용제가 실제 인슐린 펌프 사용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