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약 1명이 치매환자이고, 가장 흔한 유형인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중 약 76%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계된다. 전세계가 치매에 대한 고민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알츠하이머병 원인 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치료제가 미국, 일본 등에서 허가를 받아 주목받고 있다.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지만 진행을 27% 가량 늦출 수 있어 치매 전(前)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에 사용할 경우 중증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국내 254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의료진은 향후 알츠하이머병 및 치매 치료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 정지향 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령화 진행될수록 알츠하이머 환자도 증가"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00만명이 앓고 있는 질병이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유병률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역시 고령화로 알츠하이머 및 치매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치매 예방과 치료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기는 만큼 중요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1년 치매환자 연간 총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18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GDP의 약 0.9%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비용은 치매 중증도가 높아질수록 증가하기 때문에 진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로 인한 치매를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게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지향 교수는 "2030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수명이 긴 국가가 전망이다. 물론 장수는 큰 축복이지만 고령화와 함께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질병이 바로 암과 알츠하이머"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인지장애 단계에서 관리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고, 스스로 삶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며 "치매 관리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알츠하이머 원인은 여러 가지로 의심되지만 그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아밀로이드 베타(β-amyloid, Aβ) 단백질의 이상 축적현상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축적되는 원인은 아밀로이드 베타라고 하는 독성 단백질 과생성과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는 매커니즘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 교수는 "전자는 65세 미만 치매의 주된 원인이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과생성 되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일 가능성이 있다. 후자는 65세 이후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병 원인의 대부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항 아밀로이드 베타 기전의 약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등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를 저해함으로써 아세틸콜린 양을 증가시키는 기전의 약제가 사용돼 왔다.
그는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는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약 3~6개월간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진다. 다만 이미 축적된 아밀로이드를 직접적으로 없애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경 손상을 막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약물치료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증상 악화 속도가 느려지면서 환자들은 일상생활을 조금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고, 요양원 등의 시설 입소 시기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로 인한 신경세포 손상을 지탱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고, 이는 의사들이 현 약물치료를 권고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알츠하이머 진행 지연, 고령일수록 큰 의미"
최근 항 아밀로이드 베타 기전 약제가 미국 FDA 및 일본에서 승인됐다. 투여 대상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및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다.
항 아밀로이드 베타 치료제는 3상 임상을 통해 기준점으로부터 18개월 시점에 치매 척도인 CDR-SB(Clinical Dementia Rating-Sum of Box) 저하속도를 27%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치매 증상을 18개월 지연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은 환자 케어에 대한 부담이 줄고, 환자 스스로도 일상생활 영위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70대 이상 노인들에게 있어 18개월 동안 스스로 일상생활 유지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다는 것은 20~30대 환자에서 보다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18개월 증상 지연 위해 고가의 약? 다양한 옵션 주어져야"
항 아밀로이드 베타 치료제가 미국과 일본에서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약의 효과와 비용에 대한 부분인데, 상대적으로 높은 약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정 교수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환자들에게 알츠하이머라고 하면 '그게 뭐냐'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는 10명 중 9명의 환자가 알츠하이머에 대해 알고 있다. 이분들 중 50%는 새로운 약이 나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항 아밀로이드 베타 치료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이 약의 효과와 비용에 대한 부분이다.
일부 신경과 교수들 사이에서는 "18개월 증상 지연을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약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을까"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환자들에게도 미국, 일본 환자들과 같이 약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초반 치매환자들도 1999년에 등장한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로 치료할 수 밖에 없다"며 "신약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너무나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환자들이 새로운 약제 등장 소식을 접하고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 불공평함을 느낄 것"이라며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새로운 약이 급여화되기까지는 여러 학회들의 논의와 다양한 절차가 필요하다.
정지향 교수는 "신약이 들어온다고 당장 급여화 되기는 어렵겠지만 급여화 걱정으로 도입이 늦어진다면 환자들에게 너무나 소중한 18개월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물 안에 메기가 들어오면 다른 물고기들 움직임이 활발해지듯 새로운 약 도입과 인지중재 치료, 아밀로이드 PET 급여화가 중증치매 비율 감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