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민·이슬비 기자] 21대 국회 마지막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막이 올랐지만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가열되며, 간호법과 필수의료를 비롯해 의료계를 뜨겁게 달군 의료 현안은 지난 대정부질의에 이어 이번에도 뒷전으로 밀렸다.
11일 시작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는 간호법과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재인케어’ 등 의료계 촉각이 곤두서는 현안이 산적했지만 구체적으로 이슈화되지 못했다.
이날 국정감사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화두로 떠오르며 야당 의원들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은 정부가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를 비공개 처리했는데 그 사유 역시 불분명하다”고 질타했다.
‘방사성물질이 포함된 오염수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연구용역 보고서는 지난해 6월 질병청에 제출됐는데, 질병청은 ‘사회적으로 이슈 되는 사안’이라는 이유로 이를 비공개로 분류했다.
용역보고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영향에 대해 국민을 대상으로 장기적 추적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정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에 대한 국민적 불안은 타당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런데 질병관리청에서 이 연구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소 20년 이상 장기간 추적조사를 통한 빅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며 “처리된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윤 정부와 상반된 내용으로 용산 눈치 보고 여당 눈치봐서 비공개 처리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덧붙였따.
하지만 지영미 질병청장은 "고의적으로 비공개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지난 6월에 용역 존재를 보고받았고 국무조정실에는 지난 8월 결과를 공유했다”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라 비공개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도 “질병청에 해당 보고서를 확인하기 위해 비공개 처리된 연구용역보고서 전체 목록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질병청은 전국민이 관심이 보일 것 같은 방사능 오염수 인체 영향 연구용역을 누락하고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늦게서야 의원실로 사유서를 보내와 고의 누락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 보고서만 누락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역시 “공개 여부 결정을 누가 했는지, 용역결과를 대통령실 등에 보고했는지 등 질병청장이 명확하게 답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영미 질병청장은 “보고서 목록 누락 건은 해당 기관장으로서 사과드린다”며 “국무조정실에는 결과가 공유됐으며 대통령께는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야당 “필수의료는 의대 정원 늘려야 해결” 맹공···정부 “규모·방식 아직 미정”
의료계 관심사로는 의대 정원 확대, 간호법, ‘문재인케어’ 등이 국정감사장에 소환됐지만 시원한 정부 측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필수의료 붕괴 현상 해법으로 야당은 의대 정원 확대를 지목했다. 그간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반발로 추진이 더뎠지만 “더 이상 눈치보지 말고 결단을 내리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김영주·정춘숙·김원이 의원이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정부 계획을 집중 질의했으나, 조규홍 장관은 “2025학년도 입학 정원에 확대된 인원을 반영하고 의료계와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방향성만 밝힐 뿐 규모나 방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김영주 의원은 “정부가 500명대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소식이 또 나왔는데, 이것도 잘못된 사실이냐”며 “의사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정부가 의사단체 눈치만 보고 있는 모습을 국민들이 보고 있다”고 질타했다.
급기야는 “극단적인 사례지만 정부가 의사협회와 국민 중 누구를 선택할지 기로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니 분명한 의지를 갖고 계획을 알려달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정춘숙 의원은 OECD 회원국가 평균에 비해 부족한 의사 수를 근거로 들며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 의원은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대 졸업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약 7.2명으로 OECD 평균 13.6명의 53% 수준”이라며 “의사 수가 OECD 평균 80%에는 도달할 수 있도록 의대 증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력 배분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의대 정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료취약지 공공의대 신설 vs 의사 양성 과정 분석 우선···간호법 재입법 ‘회의적’
김원이 의원은 “의대 증원이 지역 공공의대와 연계되지 않으면 수도권 성형외과 의사 양산에 그친다”며 “의대가 없는 목포·안동·창원 등 국립대학에 의대 신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의견을 보탰다. 강 의원은 “의대 정원 규모도 중요하지만 증원된 인력이 공공성을 갖고 필수의료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며 “의료취약지 의대 신설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의사 출신 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의대 정원보다는 의사 양성 과정을 분석하는 게 먼저라고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그는 “의사 정원이 늘면 진료과목 쏠림이 해소될까”라며 “젊은 의사들의 입시·수련·취업 변화 등을 관찰하는 게 정원 확대보다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올 상반기 입법이 무산된 간호법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재입법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고령화 사회 대비책으로 간호법 재입법 필요성을 강조하자, 조 장관은 “특정 직역의 역할만 규정해서는 안 되고 전체 의료법 체계 내에서 새로운 역할을 짜야 한다”며 “별도 법 제정보다는 의료법 내 혁신 추구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문재인케어 시행 후 폭증하는 MRI·CT 급여비 등 건강보험 보장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조 장관도 공감을 표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정권 교체 후 해결을 촉구했는데 해결이 미적거리는 느낌이다. 고삐를 쥐고 해결하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