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바이오 사업 전략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SK그룹은 최근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촌동생이자 SK케미칼과 SK바이오사이언스의 중간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직에 올랐다. 또한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 임원인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바이오 사업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SK케미칼이 제약부문 매각 추진에 나서는 등 사업 재편 움직임까지 나타나면서 SK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제약·바이오 사업 전략도 대폭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현재 중국에서 건립 중인 최첨단 1000병상 병원 건립도 진행 중이어서 SK그룹의 헬스케어 로드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SK케미칼은 현재 제약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SK그룹은 중국 우시에 1000병상 규모의 병원 공사를 진행 중인데, 제약사업 정리에 나서면서 SK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 방향성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업계 전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비주력 사업인 케미칼을 정리하고 수익성 높은 그린 케미칼에 집중 투자할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에 SK바이오팜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바이오 자회사 집중 지원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이밖에 SK케미칼이 M&A를 통해 항암제 사업을 확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히 요즘 전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CAR-T 세포치료제나 면역항암제 등의 제약사를 인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지난 9월 제약 사업부를 사모펀드 운용사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매각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K케미칼이 제약사업부를 분할한 뒤 글랜우드PE가 지분 100%를 인수하는 방식이며, 매각 규모는 약 6000억 원이다.
SK케미칼은 당시 "구체적인 조건들에 대해 협의 중이며, 추후 관련 사항이 확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내년 1월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 제약사업 성장세 정체
SK케미칼은 1987년 삼신제약을 인수하며 제약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91년 은행잎 혈액순환개선제(기넥신F) 개발에 성공했으며, 1996년 세계 최초 관절염 치료 패치 '트라스트', 1999년 국내 최초 항암 신약 '선플라', 2001년 천연물 신약 1호인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 등을 내놓으며 제약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후 2001년에는 동신제약을 인수해 백신, 혈액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2015년 SK플라즈마(혈액제 사업), 2018년 SK바이오사이언스(백신 사업)를 분사하면서 SK케미칼의 제약 사업 성장세는 정체됐다.
실제로 SK케미칼의 영업이익은 2021년 4분기 2930억 원에서 지난해 1분기 487억 원, 2분기 872억 원, 3분기 497억 원, 4분기 448억 원, 금년 1분기 86억 원, 2분기 -138억 원으로 하락했다.
그린케미칼 사업부 매출, 제약 사업부보다 2배 이상 많아
업계에서는 SK케미칼이 제약 사업부를 정리하고 수익성이 높은 그린 케미칼 사업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년 상반기 SK케미칼 제약 사업부는 52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그린케미칼 사업부는 394억 원의 이익을 냈다.
금년 2분기 기준 매출액도 제약 사업부는 836억 원, 그린케미칼 사업부는 2116억 원이다.
그린케미칼 사업의 경우 시장 전망도 밝은 상황이다.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로 2030년 화학적 재활용 시장 규모가 10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케미칼은 앞서 폐플라스틱 활용 친환경 소재 분야에 내후년까지 1조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투자 비용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투자·새 회사 인수 가능성 제기
업계 일각에서는 SK 그룹 차원에서 백신 사업을 키우려는 의자가 강해지면서, SK케미칼이 바이오 자회사를 지원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SK바이오사이언스는 향후 5년간 2조4000억 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적자를 감수하더라고 향후 3년간 집중적인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하면서 급성장을 이뤄냈다. 2019년 228억 원이던 영업이익은 2년 만에 4748억 원으로 급증했다.
또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멀티주'의 품목허가를 받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엔데믹 전환으로 신성장동력 발굴이 시급해지면서 이를 위한 그룹 차원의 자금 조달도 필요한 상황이다.
매각 자금으로 M&A 가능성 제기
이 외에도 SK그룹이 M&A로 성장한 회사인 만큼 SK케미칼 제약 사업부 매각 자금으로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과거 SK케미칼이 삼신제약, 동신제약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한 것처럼 유망 기업을 인수해 사업을 키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항암 사업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CAR-T 치료제가 3세대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고, 시장 규모도 연평균 45.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SK도 CAR-T 치료제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SK케미칼은 수년 전 제약사업부 매각설이 불거졌을 당시 직원들에게 이를 부인하며 M&A 계획을 밝힌 바 있다.
SK케미칼 직원은 "당시 회사 측은 '매각은 절대 안 한다'면서 '우리는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서 회사를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SK그룹이 중국 장쑤성 남부에 있는 우시에 1000병상 규모의 최첨단 병원 공사를 진행 중이라는 점도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말 완공 예정인데 다소 시기가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병원 건립이 SK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향후 진행될 사업과 연계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다만 SK케미칼 노조가 제약사업부 매각 반대에 나서면서 매각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SK케미칼지회 노조 관계자는 "최근 회사 측과 교섭을 시작했지만 진전된 게 전혀 없다"며 "매각 계획, 매각 발표 후 진행 상황 등에 대해 그동안 들은 내용이 전혀 없어 대책 마련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매각은 검토 중인 단계로 향후 사업 계획은 결정된 바 없다"며 "노조와 진솔하게 소통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