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上] 공공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요구가 거세지만 정작 현재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 처우는 민간보다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공공의료기관을 이탈하는 의료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극명히 드러났다. 해당 조사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담당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의료기관 의사 연평균 임금은 지난 2010년 8779만원에서 2020년 1억5953만원으로 연평균 6.2% 증가했다. 하지만 임금 수준은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2020년 기준 공공의료기관 근무 의사 임금은 전체 요양기관 근무 의사 임금인 2억3069만원의 69.2%에 불과했다. 공중보건의사 임금은 전체 의사의 26.8% 수준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 소재 공공의료기관 의사 임금이 1억8252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울산이 1억978만원으로 제일 적었다. 서울은 1억5044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적었다.
공공의료기관은 의사 이직률도 전체 요양기관 평균보다 높았다. 2020년 기준 전체 의사 평균 이직률은 17.2%인 반면 공공의료기관 의사 이직률은 평균 21.0%였다.
보건소·보건기관 근무 의사 이직률이 28.0%로 가장 높았으며 이직률이 제일 낮은 국립대병원도 19.4%로 전체 의사평균보다 높았다. 시도군립병원 의사 이직률은 26.2%였으며 지역 공공병원은 20.3%였다.
공공의료기관 의사 수는 지난 2010년 9663명에서 2020년 1만1000명으로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1.3%로 전체 의사 연평균 증가율인 3.2%보다 낮았다.
전체 활동 의사 중 공공의료기관 의사 비율은 2010년 13.4%에서 2020년 11.1%로 감소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 중에서도 국립대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가 54.9%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국립병원·특수공공병원 17.3%, 지역 공공병원 11.0%, 보건소·보건기관 9.0%, 시도군립병원 7.9% 순이었다.
공공의료기관 의사 인력 사이에는 고령화 현상도 나타났다.
50세 이상 의사 비율은 2010년 9.9%(952명)에서 2020년 22.4%(2,459명)로 늘었다. 특히 60세 이상 의사 연평균 증가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임교수 구하지 못한 ‘국립대병원’ , 계약직 의사로 빈자리 메워
개원하는 교수들이 늘면서 국립대병원도 전임교수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 전임교수를 구하지 못한 국립대병원들은 그 자리를 계약직 의사로 채우고 있었다.
최근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대병원 임상분야 전임교수는 지난 2019년 1906명에서 2023년 2145명으로 12.5%(239명)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촉탁의·진료의사 등 계약직 의사는 427명에서 672명으로 57.3%(245명)나 늘었다. 이 같은 경향은 충북대병원을 제외한 9개 국립대병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4년 동안 계약직 의사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전북대병원으로 지난 2019년 5명에서 2023년 19명으로 280%(14명) 증가했다.
이어 전남대병원 229%(14명→46명), 충남대병원 218%(17명→54명), 강원대병원 200%(1명→20명), 경북대병원 182%(22명→62명) 순이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김 의원실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대학병원 교수 임금체계는 호봉제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 봉직의나 개원의 소득보다 낮은데 반해 진료와 학생교육, 연구 등 업무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지방 대학병원일수록 교수 채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임교수 공백을 촉탁의 등 계약직 의사가 메우면서 전국 대학병원의 계약직의사 연봉도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6월 기준 각 국립대병원이 지급하는 연봉은 전임교수보다 계약직 의사가 더 높았다.
경북대·부산대·서울대·전남대·전북대·충북대병원 등 6개 병원은 지난 2019년에는 전임교수 연봉이 계약직 의사보다 더 높았지만 올해는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 의원은 “대학병원 교수 구인난은 의사인력이 수요보다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신입생 증원이 충분한 규모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지역 최상위 의료기관 역할을 맡는 대학병원에는 인력 등의 지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지방 국립대병원 역량, 수도권 수준으로”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최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 “국립대병원 역량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여, 지역에서 중증질환 치료 완결과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국립대병원 필수의료 분야 교수 정원을 대폭 확대하고 인건비를 개선토록 했다. 2년내 퇴사율이 50%를 넘는 국립대병원 의사들 이탈을 막겠다는 취지다.
복지부는 민간·사립대병원과 보수 격차를 그 요인으로 보고, 국립대병원 총인건비를 연간 1~2% 증액하게 된다.
국립대병원 증원도 요청했다. 해당 사안은 본래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심의를 거쳐야 하며, 지난해 증원 요청은 4799명 중 36.9%인 1735명만 승인 및 배정됐다.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옮기는 부분도 공식화했다. 복지부는 소관 부처를 이관, 총괄하는 보건의료정책을 빠르게 반영하고, 인력 수요도 탄력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국립대병원 권한을 △통합시스템을 통한 지역 필수의료 자원관리 △공급망 총괄은 물론 필수의료 지원사업 및 기관(공공전문진료센터·지방의료원 등) 성과 평가를 주도하는 데까지 대폭 늘렸다.
기존 복지부가 담당했던 평가에 지자체와 더불어 국립대병원이 참여한다.
국립대병원을 거점 중심으로 지역별 1~3차 의료기관이 협력하는 지역 필수의료 네트워크로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동일 시도 내 진료 의뢰 시 3000원 가산 △상급종합병원 평가지표에 동일 시도 2차의료기관 회송 실적 반영 △국립대병원 교수의 지방의료원 등 출장 진료 활성화 등도 제시했다.
각 지역 국립대병원을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 국립대병원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은 인천 길병원과 울산대병원을 지정키로 했다.
지역 의과대학의 지역인재 선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지역에서 성장한 학생이 지역 의대에 입학 후 지역에 남아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 외에 △필수의료 전문의 고용 기준 강화 및 인건비 지원 △입원전담전문의제도 개선 △공공정책수가를 통한 중증·응급의료의 보상 강화 △필수의료지원센터 지원 확대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추후 국립대병원 등 거점기관과 지역·필수의료 혁신 T/F를 구성, 논의하고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너무 커진 임금 격차, 정부 혁신전략 실효성 의문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환자 유출 폭이 큰 상황에서 이 같은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주장과 함께 “보수 인상 규모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한 의료인력 확충을 통해 지방 국립대병원 공공·필수의료분야에 신규 인력을 투입해도 이들이 해당 영역에 계속 남아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나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의료·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야 답(答)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필수과를 중심으로 전공의 수련에 관한 국가 지원과 책임을 강화하고, 국립대병원의 인력 고용 탄력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고용계약 모형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여 위원은 “지방 국립대병원 의료인력들이 필수의료분야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규제완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종사자들의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상대적 상실감이 더 커지지 않도록 처우 등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과)는 “통상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돈(임금)과 삶의 질, 해당 직업을 수행했을 때 가질 수 있는 보람을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정 교수는 “지역 공공병원 필수의료 종사자는 이중 보람에 무게를 두고 상대적인 임금 격차를 견뎌왔다.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 커지면서 해당 분야가 무너지고 있어 실질적인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강준 복지부 의료보장혁신과장은 “너무 많은 급여 차이로 현장을 떠나는 일을 막을 수 있도록 인력 지원 대책을 함께 가져갈 것”이라며 “지역거점병원을 중심으로 지역의료체계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