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어릴 때 영국에서 시신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인간 성장호르몬(c-hGH)을 투여받은 사람 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례가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지만, 치료 과정에서 전염된 의인성(醫因性) 알츠하이머병일 수 있다며 유사 사례에 대한 예방 조치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존 콜링 교수팀은 30일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서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c-hGH 치료법으로 1959~1985년 치료받은 사람 중 5명에게서 알츠하이머병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 증상 또는 징후를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영국에서는 1959~1985년 1천848명이 시신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인간 성장호르몬을 투여받았다. 그러나 일부가 변형 단백질 프라이온(prion)에 오염된 c-hGH를 투여받은 후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vCJD)으로 사망하면서 관련 제품은 모두 회수됐고 치료법은 중단됐다.
이 치료법으로 영국에서만 80건의 CJD 발병 사례가 발생하는 등 세계적으로 200명 이상 CJD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앞서 c-hGH 투여 후 의인성 CJD로 숨진 사람들에 대한 분석에서 치매 관련 독성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Aβ)가 전염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발견해 보고했으며, 보관돼 있던 치료용 c-hGH 중 일부에 Aβ와 타우(τ) 단백질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어렸을 때 c-hGH를 투여받았지만, CJD에 걸리지 않은 8명이 알츠하이머병 관련 증상 및 징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중 5명은 알츠하이머병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조기 치매(38~55세 발병) 증상을 보였고, 두 개 이상의 인지 영역에서 일상생활 수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진행성 장애를 겪었다.
또 나머지 3명 중 한 명은 경도 인지장애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 증상이 42세에 나타났고, 다른 한 명은 주관적 인지 장애 증상이 있었으며 한 명은 무증상이었다.
연구팀은 조기 치매 발병 증상을 보인 5명 중 2명에게서는 생체 표지 분석에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얻었고 다른 한 명에게서는 알츠하이머병 발병 가능성을 시사하는 징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연구 기간에 사망한 환자 2명 중 한 명의 뇌 조직 표본 등 부검에서는 알츠하이머병 병리 소견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5명의 표본을 채취해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모두 알츠하이머병 조기 발병 요인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이 CJD와 마찬가지로 드물지만 전염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c-hGH가 더는 사용되지 않고 이 연구에서 드러난 환자들도 수년간 반복적으로 노출된 후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때 알츠하이머병의 의인성 전염은 드문 것으로 보이며 다른 일상적 치료나 일상생활에서 알츠하이머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어 이 결과는 다른 유형의 알츠하이머병 유발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치료 전략에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Aβ의 의인성 전염이 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의학적 치료 등을 통해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 전염에 대한 예방 조치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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