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한 의과대학 교수가 연구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받지 않고 생체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8단독 김범준 판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서면 동의 등 법이 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연구원 세포 샘플 등을 수집했다면서도 해당 정보를 '유전정보'나 '민감정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 교수는 2016년 1월 연구원 B씨에게 연구원들의 구강상피세포 샘플을 받아 연구에 필요한 결과를 측정해 제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 등 7명은 지시에 따라 같은 해 1월 11일부터 한 달여간 하루 5회씩 3시간 간격으로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했다. 이후 세포에서 추출한 RNA 전사량을 측정해 A씨에게 보냈다.
A 교수는 그해 4월 이렇게 받은 세포에서 소형 RNA를 추출해 임의로 제삼자인 유전자 검사 업체에 샘플을 제공했다.
2019년에는 또 다른 연구원에게 같은 방식으로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해 RNA를 추출, 전사량을 측정한 뒤 샘플과 결과를 제출하게 했다.
검찰은 연구원들의 동의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하지 않아 불법행위라고 봤다.
유전자 검사 대상물을 채취하거나 채취를 의뢰할 때 받아야 할 서면 동의가 없었고 민감정보를 수집·이용하면서 정보제공자에게 그 목적과 보유 기간, 거부할 권리 등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변호인은 "연구 목적 등을 충분히 설명했으며 기술 연습과 훈련을 위해 자발적으로 채취하고 RNA 발현량 측정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연구원 증언, 이들이 신분상·경력상 불이익 등을 염려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증인으로 나온 연구원들은 채취 목적이나 연구 내용 등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졸업이 늦어지거나 레퍼런스(평판)가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여러 불이익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귀찮고 하기 싫었지만 마지못해 할 수밖에 없었다"라거나 "교수님이 평소 화를 자주 냈을 뿐 아니라 거부할 경우 1년마다 돌아오는 조교 재계약을 안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다만 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생명윤리법 위반을 최종 인정하지 않았다.
구강상피세포 샘플을 이용해 RNA 전사량 또는 발현량을 측정한 정보는 생명윤리법상 '유전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유전정보란 인체유래물을 분석해 얻은 개인의 유전적 특징에 관한 정보를 뜻한다.
김 판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가 유전정보에 해당하는지 보다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며 미국의 유전정보 차별금지법 등 해외 입법례와 관련 학술 논문, 유네스코·유럽연합(EU) 규정, 국내 전문가 진술 등을 살펴봤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해 유전정보를 '개인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형질로 변하지 않고 개인을 식별해낼 수 있는 정보'로 규정하고 RNA 전사량·발현량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RNA 전사량·발현량은 측정 시기, 식사 여부, 충분한 수면 여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며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성질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유전정보의 세 가지 특징인 가족 공유성·불변성·고유 식별성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유전정보에 해당한다 해도 '개인의 식별 목적 또는 질병의 예방·진단·치료 목적'으로 측정하지 않아 생명윤리법이 규정한 '유전자 검사'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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