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 사태로 촉발된 진료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해 불만이 커진 환자와 보호자들의 난동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평소에도 환자나 보호자 항의가 적잖았지만 파업 사태 장기화로 진료기능이 정상 작동하지 못하면서 진료현장 의료진은 고스란히 ‘욕받이 신세’가 돼버린 형국이다.
현행 의료법에는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료인 대상 폭언과 폭행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의료진 부재와 원활치 않은 진료 시스템에 불만을 품은 환자나 보호자들의 폭력적 행동들이 빈번해 지는 상황이다.
실제 이달 초에는 전공의 이탈로 의료진이 부족한 응급현장에서 만취한 40대가 진료가 늦다며 행패를 부렸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공의 이탈로 중증환자만 받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빨리 봐주지 않는다"며 행패를 부린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환자는 술을 마시던 중 복통을 느껴 충북 청주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진료가 늦어지자 10여분 간 욕설을 하는 등 행패를 부린 혐의를 받는다.
‘중증 외상환자가 아니라서 대기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격분해 진료접수 3분 만에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대학병원 응급실은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의료인력 부족으로 중증환자만 받고 있었다. 당시 응급실에 근무하던 의사는 전문의 2명 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또 다른 응급실 난동 소식도 전해졌다. 대전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의료진을 폭행하고 난동을 피운 환자가 경찰에 입건됐다.
해당 환자는 안면부를 다쳐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의료진을 향해 욕을 하고 응급구조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 환자는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의료진의 명령조 말투에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전공의 파업이 길어지면서 힘겨운 응급실 의료진이 점점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일련의 상황은 참담함을 넘어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며 “사명감이 자괴감으로 변해가는 게 작금의 응급의료 현장”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병원협회는 진료현장 잇단 난동 사례로 의료진의 신변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전국 회원병원에 의료진 대상 폭언 폭행 근절과 인권침해 예방 포스터를 배포했다.
응급실을 비롯해 환자나 보호자와 잦은 마찰이 발생하는 진료현장에 포스터를 부착해 경각심을 갖도록 하라는 취지다.
해당 포스터는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의료공백 사태로 인한 병원 내 난동이 잦아지면서 재배포했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최근 의료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진료현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경각심 제고 차원에서 포스터를 재배포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병원 내 난동과 관련해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실제로 처벌에 이른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또한 신고 후 피의자의 요청으로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경우가 70%에 달했다.
이는 의료진이 폭행이나 폭언을 당했더라도 실제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고 신고를 하더라도 당시 환자나 보호자의 사정을 감안해 취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