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나는 고등학교에서 한국의 가장 오래된 시(詩) ‘공무도하가’를 배웠다.
시적 은유로 그 해석에 대해 배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목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살예방연구를 하면서 우연히 다시 읽어 본 공무도하가는 놀라웠고, 가슴 아팠으며, 시적 은유가 아니라 경험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이 술병을 끼고 강물에 들어가는 것을 말리러 온 아내가 울부짖었을 소리,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뱃사공 아내가 가락을 붙여 불렀을 노래.
뱃사공은 강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격하기 쉬운 직업이고, 뱃사공이 전한 이야기가 가장 오래된 시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살이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고조선에서 있었던 일인데, 아직도 주취 상태의 자살 혹은 자살시도, 강물 투신 자살이 많고, 이제는 더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됐다.
막을 수 있는 자살과 해결 가능한 정책 존재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왔고, 문화를 꽃 피우는 한국에서 왜 이렇게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낮은지 명확하게 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막을 수 있는 자살이 있고, 해결을 위한 정책 방향성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필자는 자살예방연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살 시도자들을 만나 보았다. 나의 편견을 깨부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삶의 의욕이 있었고, 감사의 눈을 하고 있었다.
음독자살시도 후유증으로 목이 쉰 것 말고는 너무 평범했다. 살 집을 얻게 됐고, 끼니를 해결하고,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며 나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도저히 더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전자는 정신의학적 중재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의학적 중재 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삶 전반에 걸친 중재, 서비스기관 협력 네트워크 중요
나는 현장에서 자살 예방을 위한 중재가 삶 전반에 걸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살은 정신과적, 경제적, 신체적 문제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보건, 복지, 법률, 교육, 구직 등 살아갈 방법을 이어줄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 기관의 협력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자살예방사업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은 자살예방센터가 되겠지만, 행정복지센터와 복지관을 비롯한 복지·행정기관도 사례관리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가정에 방문하는 간호사나 사회복지사들이 집과 이웃의 상황을 직접 보고 자살 고위험군을 의뢰하는 경우 자살예방센터에서 사례 관리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다.
이는 복지·행정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형성된 라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살예방개입에는 지역의 다양한 서비스 자원을 잘 아는 기관과의 협조가 매우 중요한데, 자살예방센터보다는 센터의 관리 감독 기관인 보건소가 지역 자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거나 접근 가능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건소와 센터의 긴밀한 협조가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살예방센터가 지자체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자살예방센터가 설치되는 지자체 단위별 맞춤 사업뿐만 아니라 하위단위 지역별로 자살영향요인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국 단위 자살예방실태조사는 의무다. 하지만 자살예방법 제11조와 같은법 시행령 제6조에 따라 지자체 단위 조사는 임의조항이다.
또한 누가 언제 어떤 경로와 이유로 자살 고위험군으로 의뢰 됐는지에 대한 정보를 하위단위 지역별로 관리하고, 이를 통합해서 추가적인 정책 결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료 없는 근거 기반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