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환자가 완화의료 상담을 받으면 생애말기 공격적이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혈액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문 완화의료 상담의 역할을 보여주는 국내 최초 연구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신동엽 교수팀은 혈액암 환자에서의 완화의료 상담이 생애말기 공격적 의료 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혈액암은 항암 치료법 발전으로 생존율이 향상됐으나 여전히 많은 환자들에서 질병이 진행하고 생애말기에 이른다.
특히 그 과정에서 혈구감소증이나 감염과 같은 합병증으로 중환자실 치료, 심폐소생술 혹은 신대체요법 시행, 인공호흡기 등 공격적 치료를 받는 환자가 많다.
기존 고형암 환자에서는 조기에 암 치료와 전문 완화의료 상담을 병행하면 생애말기 돌봄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혈액암 환자의 경우 완화의료 상담을 의뢰하는 비율이 낮고 주로 질병 경과 후기에 상담이 진행되는 경향이 있어 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지금껏 국내에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한 혈액암 환자 487명을 대상으로, ‘자문 기반 완화의료 상담 서비스’가 생애말기 공격적 치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해당 상담은 중증질환자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다학제로 이뤄진 완화의료팀이 전인적 케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분석 결과 사망한 혈액암 환자(487명) 중 입원 기간에 완화의료 상담 서비스를 받은 환자는 32%(156명)로 나타났다.
그 중 급성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진행이 빠른 환자군, 입원 시점에서 질병 상태가 조절되지 않는 환자군 등에서 완화의료 상담을 받은 비율이 높았다.
또한 본인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문서를 작성한 완화의료 상담군과 비상담군 비율은 각각 34%, 18.4%로 나타났다.
사망이 임박한 시기에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비율 역시 완화의료 상담군(34.4%)이 비상담군(19.9%)에 비해 유의하게 높았다.
이는 완화의료 상담이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결정을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추가적으로 연구팀은 비상담군과 완화의료 상담군의 ‘사망 전 1달 이내의 공격적 치료 비율’을 세부 항목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중환자실 56.8% vs 25.0% △심폐소생술 22.4% vs 3.8% △인공호흡기 53.2% vs 18.6% △신대체요법 39.6% vs 14.7% △중환자실 사망 50.8% vs 10.9%로 모든 항목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특히 ‘중환자실에서의 사망 비율’은 완화의료 상담군은 비상담군에 비해 중환자실에서의 사망 비율이 약 4.7배 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나이, 성별 등 인구사회학적 요인과 질병군, 예후인자 등 임상적 요인을 감안해 분석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완화의료 상담군이 비상담군에 비해 사망 14일 이내에 항암치료 확률이 약 46%, 사망 1개월 이내에 중환자실 입실 확률이 약 73%, 중환자실 사망 확률이 약 89% 더 낮게 나타났다.
또한 3일 이내로 사망이 임박한 시기에 혈액검사, 영상검사, 비위관(콧줄) 삽입, 혈압상승제 사용 등의 처치를 받은 비율도 완화의료 상담군이 비상담군에 비해 유의하게 낮았다.
혈액암 환자에서 빈번히 이루어지는 수혈 횟수 역시 사망 임박 시에는 완화의료 상담군이 비상담군에 비해 유의하게 적었다.
이는 완화의료 서비스 제공이 혈액암 환자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지원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신동엽 교수는 “최선의 암 치료와 완화의료를 병행해 생애말기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남은 삶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혈액암 치료 분야 국제 학술지 ‘유럽 혈액 학회지(European Journal of Haemat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