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이탈과 이에 따른 의료 공백이 4개월째 이어지면서 암환자들이 제때 정상적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특히 췌장암 환자들 중에서는 67%가 진료 거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는 5일 췌장암 환자 281명을 대상으로 ‘의료공백으로 발생한 암환자 피해사례 2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67%는 진료 거부를 겪었다고 답했으며 치료가 예정보다 늦어졌다는 답변도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협의회는 “지금까지 중증·응급환자에 대해 큰 문제 없이 원활하게 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부와 의료계의 발표는 포장된 내용임이 조사 결과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사에서 한 환자는 "전공의 파업으로 입원이 2주가량 지연돼 3월에 항암 치료를 한 차례 밖에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부작용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방 항암’으로 변경하고 약제도 바꾸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방 항암'은 암환자들이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제와 이를 정맥에 주입하는 기구를 가방에 챙겨 다니며 직접 치료를 한다는 의미다.
또 다른 환자는 "항암치료 중 다른 부위로 전이가 발생했지만, 그 동안 다니던 병원에서 새 환자를 받지 않는다며 전원을 요구 받았다"고 주장했다.
복수가 차서 두 달 넘게 식사를 못하던 중 응급실에 갔다가 의료진으로부터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환자만 오는 곳'이라고 핀잔만 들었다는 환자도 있었다.
응급실에서 혈소판 수치가 높게 나왔는데도 수혈을 거절당하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간 사례도 나왔다.
협의회는 "정부와 의료계가 중증 환자들의 어려움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에 ▲의료공백 발생 시 즉각적 대응체계 마련 ▲대형병원 병상 수 축소 ▲수도권 병상 허가 재검토 ▲필수 의료 전공 과정 강화 ▲비대면 진료의 공공적 관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환자단체 참여 확대 등을 요구했다.
또한 일본이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지역별로 필요한 진료과목의 전공의 수를 정하는 지역 정원제를 도입했던 사례를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협의회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사례를 참고해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 정원제를 통해 중증 질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 공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환자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