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이었다. 진료현장에서 이뤄지는 통상적인 의료진 영입이라고 하기에는 의미나 무게가 달랐다. 올해 초음파 뇌수술 세계적 권위자인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 이직 소식에 관련 학계가 술렁인 이유였다. 지난 2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장 교수는 3월부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진료를 시작했다. 그는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을 파킨슨병, 수전증 등 운동장애질환과 정신질환에 세계 최초로 시도한 인물이다. 뇌심부자극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등 선구자적 역할을 했고, 현재까지 7000례 이상 뇌수술을 집도한 바 있는 정위기능 신경외과학 분야 세계적 명의다. 거장(巨匠)의 거취만으로도 관심사였지만 그 행선지에 이목이 쏠렸다. 명문 사학인 연세대 교수가 경쟁 상대인 고려대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은 의학계에 적잖은 파고를 일으켰다.
정위 기능 신경외과학 분야 세계적 석학
△세계 최초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 성공 △국내 최초 뇌심부자극술 도입 △한국인 최초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회장 재임 등 장진우 교수의 수식어는 나열이 어려울 정도다.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의(名醫)임에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고대안암병원으로의 이적도 진료와 연구에 대한 열정에 기인한다.
“환자들이 일상을 회복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장진우 교수는 보다 안정된 진료와 연구가 가능한 곳을 찾았고, 고대안암병원에서 의사인생 2막을 열기로 했다.
정위기능 신경외과는 뇌 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질병들을 고친다. 떨림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계질환은 물론 정신질환 증상 완화에도 활용된다.
대표적 치료법에는 뇌심부자극술, 미세혈관감압술 등이 있다.
뇌심부자극술은 장진우 교수가 지난 2000년 국내에 처음 들여왔다. 이 수술은 뇌 깊은 부위에 전극을 삽입해 문제가 있는 부위에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법이다.
파킨슨병을 비롯한 신경계 질환 증상 완화와 강박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 장진우 교수는 지금까지 1500례 이상 수술을 집도했다.
안면경련과 삼차신경통 등 뇌신경 기능 이상에 대한 미세혈관감압수술과 고주파열응고수술도 5000례 이상 집도 경험의 소유자다.
미세혈관감압수술은 혈관 압박에 의한 뇌 신경 이상을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이다. 귀 뒤쪽을 약간 절개한 후 신경에 달라붙은 혈관을 분리해 의료용 스펀지를 끼워 넣어 증상을 치료한다.
정확한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MRI, 근전도검사 등을 통해 안면신경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고주파열응고수술은 고주파 열에너지를 이용해 과도하게 흥분된 뇌 신경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주로 삼차신경통 치료에 사용한다.
초음파 뇌수술 선구자
진전증은 신체 일부가 떨리는 증상이다. 안면 등 발생 부위에 따라 경련증이라 부르기도 하며 머리 떨림이나 손 떨림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손 떨림이 심할 경우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하거나, 숟가락 들기와 같은 일상적 행동에 어려움을 줄 수 있어 삶의 질을 크게 악화시킨다.
대부분의 진전증은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약물만으로 증상 호전이 되지 않는다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장진우 교수는 2011년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켰다. 신경회로 이상 부위를 열로 응고시키거나 변화를 유도하는 새로운 수술법이다.
수술 중 MRI시스템을 보면서 치료하기 때문에 정밀도와 안전성이 높으며, 뇌심부자극 수술에 비해 간단하다. 개두술을 하지 않아 환자들의 부담이 적고 부작용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은 2000년대 이후 컴퓨터공학과 영상 장비 기술이 활성화되면서 발전됐다.
장진우 교수는 2010년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WSSFN)의 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초음파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인사이텍과 공동연구를 통해 초음파 뇌수술의 실용화를 연구했다.
연구과정에서 동양인 두개골 특성을 밝혀내며 이를 바탕으로 수전증 초음파 뇌수술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 이는 현재도 세계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 활용 연구 매진
장진우 교수는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한 파킨슨병 치료 연구를 진행 중이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결핍으로 인해 운동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제는 증상을 완화해주는 약물만 존재한다. 장 교수는 전기 수술장치를 통해 도파민 세포 치료제를 뇌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파킨슨병 약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 2상까지 진행됐으며 결과에 따라 내년 3상 임상을 계획 중이다. 해당 연구가 실제 임상현장에서 적용될 경우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미국 치료초음파 재단(FUS foundation)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초음파 뇌수술을 뇌암과 치매, 중독치료에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초음파를 통해 뇌혈관 장벽을 열어 치매 치료에 효과적인 약물을 넣는 치료법, 한국인들에게 효과적인 필로폰 중독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장진우 교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며 최상의 치료법 연구와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뇌치료 초음파학회와 대한치료초음파뇌수술학회 초대회장을 맡았다.
또한 국제복원신경외과학회 회장 및 상임이사,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 사무총장, 재무이사, 부회장,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세계신경외과학회지, 국제신경조절학회지, 세계정위기능신경외과학회지 편집위원, 대한신경외과학회 이사장, 대한뇌신경장애연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 발전을 견인해왔다.
장진우 교수는 “치료 후 떨림이 사라져 환자분들이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정위기능 신경외과 수술센터 설립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센터를 고대안암병원에 설립해 환자들 치료 만족도를 높이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한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첨단 초음파 뇌수술센터(Center for Innovative Functional Neurosurgery)는 2024년 개소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