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를 비롯한 대학교수들마저 의료현장을 이탈, 환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찰에 의뢰된 리베이트 사안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제약·의료기기 회사에 대한 ‘갑질’이나 처방 대가로 받는 ‘불법 리베이트’는 의사들 도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년 반 동안 리베이트로 인한 면허 취소는 23건에 불과하다. 그간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 처벌이 관행을 끊지 못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정부는 이번에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내부 고발 등으로 신고 접수된 제약사와 의사 간 리베이트 의혹 19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지난 3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2개월간 복지부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했다.
불법 리베이트 특성상 내부신고가 많을 것으로 보고 접수 단계부터 철저한 비밀보호와 신분보장, 불이익 사전예방, 신변보호를 통해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토록 했다.
신고자가 불법행위에 가담했더라도 처벌이 감면되도록 책임 감면을 적극 적용할 계획이다. 또 신고에 따라 부당이익이 환수되는 등 공익에 기여하는 경우 최대 30억원의 보상금 또는 최대 5억원의 포상금이 지급토록 했다.
신고 대상은 의약품 공급자(제약사, 도매상), 의료기기사(제조·수입·판매(임대)업자)가 의약품·의료기기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허용된 경제적 이익 외에 의료인 등에게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 및 의료인 등의 수수 행위다.
방문·우편·인터넷 및 전화 신고상담을 통해 접수된 신고에 대해 복지부 약무정책과는 사실여부, 처리 방안 등에 대해 내부 검토를 마쳤다. 현재 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조사·수사기관에 의뢰해 관계기관과 공조하고 있다.
당초 10여건이라고 밝힌 바 있는 복지부는 총 19건을 경찰에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불거진 고려제약 사례 등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단의 수사와는 별도 진행 중이다.
복지부 약무정책과는 “총 19건을 의뢰한 것이 맞다. 지난 불법 리베이트 신고 기간 중 접수된 내용 중 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추려 경찰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수사 의뢰된 19건 중 6건은 서울지방경찰청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청 관계자는 “사안의 성격을 고려하고 집중 수사를 하기 위해 형사기동대로 일괄 배당했다”면서 “기록을 검토 중이어서 구체적인 수사 대상자와 범위까지는 확인이 어렵다”고 전했다.
고려제약 수사 속도…의사 14명 이어 100명 추가
이와 별도로 고려제약의 불법 리베이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 100여명을 추가로 입건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최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입건한 제약사 8명, 의사 14명 등 22명에 이어 관련자 조사와 압수물 분석을 통해 의사 100여명을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제약회사 관계자, 영업사원 등 70여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입건된 의사를 상대로 출석 일자를 조율해 신속히 수사, 입건되는 의사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수사 의뢰로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하던 해당 사건을 지난 3월 중순께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로 이관했다.
경찰은 의사 1000여명이 고려제약으로부터 현금을 직접 받았거나 가전제품 등 물품 또는 골프 관련 접대를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선상에 올린 상태였다.
서울청 형사기동대는 지난 4월 29일 고려제약 본사에 수사관들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고려제약이 종합병원 의사에게 약을 써주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리베이트 내용이 상세하게 적힌 ‘BM(블랙머니)’이라는 이름의 엑셀 파일을 확보했다.
경찰은 고려제약 외에도 의료계 전반으로 불법 리베이트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의료계 일각의 보복성 수사 논란에 대해선 “수서경찰서에서 국민권익위 수사 의뢰를 받아 진행된 사건으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집단행동과 전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고려제약 사건과 별도로 경찰은 자체 첩보를 기반으로 지난주 경기 안양 소재 병원을 압수수색해 현재 압수물을 분석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 1명을 포함해 관계자 5명을 입건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해당 사건이 제약사 관련 리베이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찰, 25억 수수 종합병원장 부부 구속
최근 종합병원 병원장 부부가 수년간 25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복지부 불법 리베이트 신고 이후 첫 구속사례로 경찰은 지역 내 병·의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강원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강원도 모 종합병원장 A씨와 그 병원 재무이사인 병원장 아내 B씨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수사 중이다.
이들 부부는 특정 제약사의 약품을 사용한 대가로 수년에 걸쳐 25억 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2019년부터 2023년 4~5월까지 의약품 도매업자 C씨로부터 특정 제약사의 약품을 납품받아 병원에서 사용했다. 그 대가로 구매대금의 15%를 되돌려 받는 등 약 20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C씨에게 약 20억 원을 무이자로 빌렸는데 그 이자에 상응하는 5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가 있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하지만 A씨 부부는 불법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 부부에게 돈을 건넨 의약품 도매업자 C씨 역시 약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관련 서류를 감추는 행위 등을 한 병원 직원 D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조만간 피의자들을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초 리베이트 첩보가 들어와 지난 3월부터 수사 돌입했는데, 그 액수가 커 구속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당 병원은 수년간 리베이트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으며 만성적으로 리베이트 요구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지역 내 병·의원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리베이트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의료계 “의사들 압박” 반발…제약계 ‘전전긍긍’
리베이트 수사 전방위 확산을 두고 의료계에선 “의제와 형식에 구애 없이 대화하자고 제안한 복지부가 뒤에선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등 ‘양아치 짓’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의사협회는 “서울대 비대위는 휴진 철회를 밝혔으며 일부 의료계에서는 대화의 물꼬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정부는 또다시 공권력을 앞세워 의대 교수들과 학생들을 협박하고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벼랑 끝에 내몰린 의료를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며 “정당한 행동의 의사들에 대한 위협과 위법적인 수사 진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현재로선 불법 리베이트 수사가 한동안 지속되고 그 범위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같은 영향으로 수도권 한 병원에서는 제약사 직원들의 출입 제한을 공지했다.
병원은 출입구에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병원 출입을 제한한다. 무단 출입 발각시 계약 해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병원들의 신규환자가 줄고, 입원과 수술 등이 축소되면서 제약사와 도매, 의료기기업체들의 매출 타격을 받는데 이어 영업활동까지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약사 관계자는 “매출은 줄고 영업활동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제약사 영업사원 출입을 제한한 곳도 있다”면서 “리베이트 수사가 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